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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조선족작가넷 > 습작원지 > 수필문학 > 연변문학 2017년 2호 추천작품-내가 지금 그리운것은…(리정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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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필문학 베스트 10
 
작성일 : 17-03-16 15:52
연변문학 2017년 2호 추천작품-내가 지금 그리운것은…(리정림)
 글쓴이 : 작가협회
조회 : 3,105  

                          내가 지금 그리운것은…

                                                 리정림




      계절의 순리는 누구도 잡을수 없는가보다. 해빛이 유난히 잘 들어 늘 봄일것 같던 우리 아빠트 베란다에도 어김없이 가을이 찾아왔다. 밤이면 서로 맞붙어 잠을 자고 아침이면 언제 그랬느냐는듯 서로 떨어지군 하던 자귀나무분재의 나무잎이 요즘 들어 한잎, 두잎 떨어지기 시작했다. 락엽이 되여 창턱에 내려앉은 자귀나무잎을 보면서 나는 그것이 어쩌면 그리움으로 말라버린 심장의 상징물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거의 40년전의 어느날, 붉게 단풍이 지는 가을산을 보면서 내 가슴은 온통 행복으로 빨갛게 물들고있었다. 나와 함께 걷던 한 남자가 그걸 알아채고 길에서 락엽 한잎을 주어들었다. 그리고는 “이제 보오. 이 나무잎이 곧 그리로 갈거요.”라고 했다. 아닌게아니라 그 나무잎은 며칠뒤 그 남자의 마음을 담은 소박한 “련애편지”와 함께 편지봉투에 담겨져 나한테 돌아왔다. 나에게는 “사랑”이라는 말 한마디 없는 투박한 “련애편지”보다 그 나무잎이 더 각인되여 마음을 사로잡았다. 잎맥에 아로새겨진 고운 결들에는 그 남자의 마음을 담은 수많은 언어들이 담겨져있었다.

      행복에 겨워 나무잎을 보노라니 나는 문득 언젠가 책에서 읽은 내용이 떠올랐다. 흔히 부부금슬을 이야기할 때 원앙에 비유하지만 그에 못지 않은 나무도 있다고 했다. 바로 자귀나무이다. 자귀나무는 밤이면 나무잎이 서로 맞붙어 잠을 자고 아침이면 언제 그랬느냐는듯 서로 떨어져있는 속성이 있어 합환수(合欢树)라고 불리우기도 한다. 그 말을 듣던 남자가 가슴을 탕탕 쳤다.

      “우리 고장 기온에서는 그 나무를 정원에 키우지 못할거요. 하지만 이제 두고보오. 자귀나무를 집안에 키울수 있는 널직한 팔간집을 짓고 살면서 행복하게 해줄거요.”

      아빠트요, 베란다요, 분재요 하는 말은 들어보지도 못했던 그 세월에 기껏해야 “자귀나무를 집안에 키울수 있는 널직한 팔간집”이 막연한 꿈이였지만 그것은 6년 군대복무끝에 제대되여 공사(향정부) 간부로 배치받아온 땅크병과 공사방송소 아나운서의 첫사랑속에서 움튼 아름다운 꿈이기도 했다.

      비록 키는 크지 않았지만 다부지고 탄탄한 몸매로 축구장에서, 배구장에서 날렵하게 뛰여다니는 그의 모습은 너무도 멋졌다. 평생을 믿고 맡겨도 든든할것 같은 그이는 나에게 너무도 큰 언덕이였다. 우리는 향정부주변 곳곳에 다정한 발자욱과 그림자를 남겼고 방송소에서 달콤한 첫 키스를 나누었다.

      1981년 1월, 우리는 드디여 결혼식을 올렸다. 하지만 동네집 “허덕간(헛간)”을 빌어 온돌을 놓고 신혼살림을 시작하다보니 “자귀나무를 집안에 키울수 있는 널직한 팔간집”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어서 남편은 늘 나한테 미안한 기색을 지었다. 그래도 “빵도 있고 우유도 있을거요.”라고 쏘련영화의 대사를 늘 외우면서 꿈을 잃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는 남편을 보면서 나는 행복했다.

      생활은 꿈처럼 달콤했지만 애들의 장래를 념려해 우리는 연길로 이사했다. 손에 쥔 돈이 별로 없었던탓에 우리는 철남에 있는 작고 낡은 6층집을 사게 되였다. 제일 웃층이라 겨울이면 춥고 여름이면 무더웠다. 그 집에 그냥 옷장 하나, 찬장 하나를 갖춰놓고 값싼 장판을 폈는데 그것이 장식이라면 장식이였다. 그때부터 고생이 시작되였다.

      아들애는 건공소학교를 거쳐 실험중학교를 졸업하는 날까지 시내뻐스마저 타지 않고 항상 도시락을 들고 걸어다녔고 의란에 출근하는 우리 부부는 퇴근하여 연길시내에서 내리면 뻐스값이 아까와 집까지 걸어왔다. 하다보니 집에 도착하고나면 퍼그나 늦은 시간이 되군 했다. 딸애도 한푼이라도 랑비할세라 한주일, 한주일의 지출을 계획하고 메모했다. 물론 그것이 딸애가 장차 살림을 하는데 분명히 큰 도움이 되였다고 하나 어찌됐든 그 당시에는 가난이 안겨준 쓴맛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고나면 또 힘이 나고 고생스럽더라도 웃을수 있었던것은 화기애애한 가정분위기와 눈빛 하나, 말 한마디에도 따뜻한 정이 오가는 식구들, 힘든 속에서도 버팀목이 되여주는 든든한 남편때문이였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면 입버릇처럼 “다녀올게.”라고 말하고 퇴근해올 때면 반찬거리를 한구럭 들고 오군 하는 남편의 말 없는 배려들이 나에게는 바위처럼 든든하게 다가왔다. 그이를 보면 하늘끝까지라도 따라갈 힘이 솟군 했다. 손발이 꽁꽁 얼어 퇴근해오는 겨울이면 애들이 다가와 내 손발을 주물러주느라 야단법석이였고 그이는 둘만 남은 자리에서 나의 찬 발을 당신의 따뜻한 배에 가져다대고 녹여주었다.

      가난했지만, 추운 집이였지만, 고생이 막심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나의 삶의 려정에 그때처럼 행복했던적이 없었던것 같다. 그 허술한 집에서 나는 아들딸을 류학까지 보냈다.

      그렇게 고생하다가 손에 돈을 좀 쥐게 되자 우리는 집을 장식했다. 눈물겹도록 행복했다. 인제야 사는 맛이 나는것 같아 이제 따뜻한 새봄이 오면 베란다에 자귀나무분재도 가꾸려고 했다. 그런데 새로 장식한 집에서 그이는 고작 넉달 밖에 살지 못했다.

      5년전의 그날, 퇴직을 앞둔 2월의 추운 하루였다.

      남편은 아침에 출근을 하려다말고 돌아서서 나를 꼭 안더니 진하게 키스해주었다. 가슴이 찡해났다. 이런 키스를 평소 자주 하지 않는 그이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그이한테 무슨 예감이 온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렇게 키스를 하고 나가는 그이의 뒤모습이 이승에서 내가 보는 그이의 마지막 모습일줄을 진작 알았더라면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더 했으련만.

      그렇게 나간 남편은 오후에 쓰러져서 병원에 실려갔고 스무시간쯤 지탱하다가 끝내 저세상으로 떠나가버렸다.

      아침까지 멀쩡하던 사람이, 내 볼에 키스하던 따뜻한 입김이 아직 식지도 않았는데 이 세상에 없다니? 갑자기 들이닥친 상황을 나는 도무지 받아들일수 없었다.

      가장 험난한 날을 견뎌왔는데, 그렇게 갖고싶던 멋진 장식을 한 집도 생겼는데, 아니, 새집을 장만할수도 있는데, 허구한 날 고생만 하다가 인제 살만하니 가다니 이게 말이 되는가?

      내가 집, 집 하고 집욕심만 부리지 않았더라도 혹시 그이는 잘못되지 않았을수 있지 않을가싶다. 집때문에 그런 고생을 안했어도 내 가슴이 이토록 찢어지는 통증은 없을것이다. 진한 후회가 가슴 저변을 훑고 지나갔다. 내탓이였다. 나는 모진 슬픔속에서 장장 5년을 헤여나오지 못했다.

      하지만 시어머니를 생각하면 내가 이렇게 슬퍼하고만 있을수 없었다. 자식을 앞세운 부모의 가슴은 얼마나 아플가? 내가 눈물을 보이기전에는 절대 먼저 눈물을 보이지 않는 시어머니의 아량앞에서 나는 힘을 추슬러야 했다.

      그이가 떠나가고 없는 빈자리는 너무도 컸다. 그래도 곁에 시어머니와 언니, 친구들 그리고 멀리에서 자주 전화를 주는 아들딸이 있어서 다행이였다.

      그때에야 나는 떠난이가 남겨진 사람이 그 아픔을 딛고 일어서는 모습을 지켜보고있지 않을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아픔에서 오래도록 헤여나오지 못하면 고인도 안타까와할것 같고 그 아픔을 잘 이겨내면 안심하고 이승을 떠날것 같은 생각이 든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자신의 슬픔을 안으로 감추려 했다. 그것이 고인을 위하고 사랑하는 일일것 같아서.

      나는 슬픔을 조금이라도 무마해보려고 새집으로 바꾸었다. 새집에 멋진 장식을 했고 텔레비죤이며 랭장고며 세탁기까지 없는것없이 새것으로 마련해놓았다. 나는 해빛이 잘 드는 베란다에 자귀나무분재까지 갖춰놓았다. 너무나도 화려한 집이였다. 실로 “자귀나무를 집안에 키울수 있는 널직한 팔간집”의 꿈을 드디여 이룬 셈이다. 나는 이런 집에서 살면 행복할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그게 아니였다. 어쩐지 오히려 애달픈 그리움으로 내 가슴은 피멍이 든것보다 더 쓰려나서 눈물이 났다.

      사람이 울고싶다는것은 다른 말로 “그리운것이 있다”는것이다. 누군가가 내게 그리움이란 무엇인가고 묻는다면 “가슴에 흐르는 강”이라고 대답할것이다. 잔잔하게, 때로는 격정적으로 여울쳐 흐르는 강줄기를 나는 가슴복판에 품고서 살아간다. 그 물살이 그려내는 무늬에 따라 32년간 남편과 보냈던 나날들이 퍼내고 또 퍼내도 샘 솟는 샘물처럼 그리움으로 솟아난다.

      “세월의 흐름속에서 터득한 작은 진리 하나, ‘몸의 거리는 마음의 거리가 아니라는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육체는 한낱 움직이는 어떤것일뿐이고 정말 같이 있다고 느끼는 그 마음은 몸이 아무리 멀리 있어도 멀어질수 없음을 느낍니다.”

      남편을 여읜 어느 안해가 눈물로 쓴 편지의 한구절이다. 참으로 마음에 와닿는 말이다. 몸은 멀어진지 오랜데 마음에서 지워지지 않는 사람이여서 나는 그이가 남기고 간 흔적에서 그이를 찾아보려 애 쓴다. 그런데 부러울것없이 갖춰져있는 집은 비여있는 그이의 자리가 너무나 커서 휑뎅그렁하기만 하다. 게다가 한잎, 두잎 떨어지는 자귀나무분재의 나무잎마저 마음을 쓸쓸하게 만든다. 나는 문득 집의 의미를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되였다. 집이란 비와 바람을 피하고 식사를 하고 잠을 자고 휴식을 할수 있는 쉼터뿐이 아니다. 그리고 멋진 장식을 하고 신식가정용전기기구를 구전하게 갖추었다고 최상의 집이 되는게 아니다. 집 하면 제일 먼저 구비돼야 하는 요소, 그것은 가족, 특히 사랑하는 사람이다. 어쩌면 집이 없었더라도 집보다도 더 든든한 그이만 있다면 그 어깨에 기대여 나는 지금보다 더 행복했으리라.

      그제야 나는 남 부러울것 없는 새 아빠트에서 살면서 왜 비좁고 헐망한 철남의 6층집에서 여섯 식솔이 부대끼며 살았던 세월이 그토록 그리운지를 알것 같았다. 지금 홀로 멋진 새집에서 추억에 묻혀, 슬픔에 빠져 살면서야 철남의 낡은 6층집이 내 인생의 가장 원만한 집이였다는것을 깨닫게 되였다. 나에게 있어 최상의 집은 다름아닌 남편이였다. 남편이 없는 집은 나에게 영원히 미완의 집일뿐이다.

      그러나 나는 그저 그리워만 할뿐이다. 높은 아빠트의 베란다에 앉아 락엽이 되여 창턱에 내려앉는 자귀나무잎을 보면서 그저 그리워만 할뿐이다.


세월만 가라, 가라 그랬죠

그런데 세월이 내게로 왔습니다

내 문간에 락엽 한잎 떨어뜨립디다

가을입디다

그리고 일진광풍처럼 몰아칩디다

오래 사모했던 그대 이름

오늘 내 문간에 기어이 휘몰아칩디다

-최승자의 시 “가을”을 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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