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속자 : 25 (회원 0)  전체순위 출근기록  오늘 606 어제 595 최대 928 전체 660,413  
중국조선족작가넷

  ● 延邊作家協會主瓣  

● 중국조선족문학포탈사이트

중국조선족작가넷 > 습작원지 > 소설문학 > 연변문학 2017년 2호 추천작품-서진평(김동규)
  공지사항    협회소개    문학광장    문단동태    문화카페    작가/평론    습작원지    기업광장    문학상  
  중국조선족작가넷 LOGIN
  
  
  ID저장  자동로그인
회원가입 아이디/비밀번호 찾기
시가문학
소설문학
수필문학
아동문학
기타
 소설문학 베스트 10
 
작성일 : 17-03-16 16:31
연변문학 2017년 2호 추천작품-서진평(김동규)
 글쓴이 : 작가협회
조회 : 2,718  

단편소설

                                       서진평

                                                      김동규




외삼촌네 집으로 가려면 화남역에서 기차를 타고 반시간 가량 달리다가 서진평역에서 내려 작은 고개를 넘어서면 서진평이란 마을에 도착하게 된다.

주위에 야산들이 웅기중기 둘러앉아있고 빨훌리강의 지류인 왜긍하가 주절주절 흘렀는데 강에는 물고기가 욱실거렸다. 서진평마을은 린근에서 살기 좋기로 소문이 자자했다. 산골이라 인품도 넉넉하고 서로가 화목하게 지냈다.

나는 자주 외삼촌네 집으로 놀러 가군 했다. 외삼촌은 가목사의과대학 졸업생이였는데 가목사시병원에서 의사로 있다가 원장과 몇번 싸우고는 사직하고 서진평으로 내려와서 촌의사로 되였다. 그때 외삼촌에게는 사랑하는 처녀가 있었는데 외삼촌이 시내를 떠나자 그 처녀도 도망 가버렸다고 한다.

그해도 봄이였는데 나는 기차에서 내려 외삼촌네가 살고있는 서진평마을로 가려고 작은 고개에 올라섰다. 길옆에는 이름 모를 들꽃들이 만발하고 들크무레한 풀냄새가 진동했다. 서진평은 40여호 되는 한족마을이였다. 산밑에 자리 잡은 마을은 초가집이 대부분이였는데 안온하고 포근했다. 내가 외삼촌네 집에 가면 외숙모는 물론 조카들도 좋아서 야단이였다. 하긴 거의 매일 저녁마다 술을 마시고 주정을 부리던 외삼촌이 나도 손님이랍시고 스스로 자중하였고 조카들은 내가 사가지고 간 개눈깔사탕을 먹을수 있었으니 말이다.

외삼촌은 내가 가면 마을에 나가 무슨 방법을 대서든지 돼지고기가 아니면 양고기를 얻어오군 했다. 하여 내가 외삼촌네 집에 가면 밥상이 언제나 풍성했다. 외삼촌네 집에는 마을의 한족들이 자주 마실을 왔는데 시시껄렁한 한담을 늘어놓으면서 지독한 초담배를 어찌나 피워대는지 조카들이 콜록콜록하면서 기침을 그치기 힘들었다. 비록 외삼촌이 의사였지만 가난한 마을사람들은 돈이 없어 병을 보이고는 대신 물건을 가져왔다. 닭알이며 밭에서 나는 채소며… 심지어 뉘 집 암소가 다리가 부러져 잡은 날에는 소고기도 가져왔다. 허지만 외삼촌은 술을 가져오면 제일 반가와했다. 술이 귀한 그 세월에도 병을 보이고 술을 가져오는 사람들이 가끔 있었다.

외삼촌네는 년년생으로 딸을 셋이나 보았는데 제일 큰 아이가 여섯살이였다.
아이들이 학교에 갈 나이가 되였는데도 외삼촌은 조선족이 한족학교에 가면 안된다면서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하여 외삼촌네 자식들은 언제나 집안에 오구구 모여 재잘거렸는데 맏이인 영숙이는 한족말을 곧잘했다. 외삼촌은 딸이 한족말을 씨벌일 때면 노려보다가 꽥 소리를 지르군 하였다. 그러면 영숙이는 앙앙 울었다. 맏언니인 영숙이가 울면 그 동생들도 따라서 울었다. 허지만 외숙모는 애들이 울어도 개의치 않고 노래를 흥얼거리며 뜨개질에 여념없었다.
그러다나니 외삼촌네 집 분위기는 항상 어수선했다. 외숙모는 연변돈화 사람이였는데 외삼촌이 돈화에 있는 숙부네 집에 놀러 갔다가 만난 인연이였다.
외숙모는 집안일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고 외삼촌의 지독한 잔소리와 술주정도 고스란히 받아주었다. 외삼촌의 입에서 때때로 쌍욕이 거침없이 쏟아져나왔지만 외숙모는 매양 뜨개질을 하면서 묵묵히 들어주군 했다. 하여 외삼촌은 욕을 하다가도 외숙모가 아무 반응이 없으면 화가 나서 외숙모의 엉뎅이를 발로 걷어차기도 했다. 그때마다 외숙모는 자리를 옮겨앉으면서 피했다. 외숙모의 무심함에 외삼촌은 그만 어이가 없어 혼자서 허허 웃었다. 한번은 외삼촌이 마을에 병 보러 나가더니 한족친구들을 한 무리나 데리고 와서 술상을 차리라고 호통을 쳤다. 외숙모는 집에 안주거리가 없다면서 움에 들어가 김치를 꺼내다가 상우에 올려놓았다. 이게 술안주인가고 외삼촌이 소리를 지르자 외숙모는 식칼을 가지고 와서 자기의 엉뎅이를 들이대며 “여기에 고기가 듬뿍 있소…” 하면서 자기 엉뎅이살을 베내여 술안주를 하라고 시늉했다. 외삼촌은 기가 막혀 코앞에 대고 흔들어대는 외숙모의 엉뎅이를 이리저리 피했고 한족친구들은 킬킬 웃어댔다. 나중에 한족친구들이 눈치를 보다가 밖으로 나가더니 닭 두마리를 목을 비틀어가지고 왔다. 그날 외숙모는 닭고기를 포식했고 외삼촌을 따라온 한족친구들은 엉망으로 취하여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외삼촌네 집에 가면 조카들을 데리고 놀았다. 봄이면 밖에 나가 볕쪼임도 하고 또 서진평역으로 가서 지나가는 기차를 보면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서진평역은 간이역이였기에 일반화물차는 서지 않고 객차만 일분 가량 서군 했다. 역사는 아담한 벽돌집이였는데 역장은 언제나 목에다 호각을 걸고있다가 기차가 지나갈 때마다 호륵호륵 불었다. 간이역이라 어떤 화물차가 서지 않고 그대로 지나가면 조카들은 나를 보고 저 기차는 어째 서지 않는가고 물었다. 내가 기관사가 술을 너무 많이 마셔 기차를 세우지 못했다고 말하면 조카들은 그럼 자기네 아버지는 영원히 기차를 몰지 못하겠다고 아쉬워하면서 한숨을 쉬군 했다. 역사뒤로 밋밋한 산이 뻗어있었는데 이름 모를 나무들이 자라고 산등성이에 걸려있는 하늘에서 쏟아져내리는 해빛은 나무가지에 걸려 일렁이고있었다.

그해 여름이였다. 하루는 외삼촌이 밤중에 산너머 마을에 환자가 있어 왕진을 가게 되였다. 외숙모와 우리는 외삼촌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다가 잠이 들었다.
헌데 다음날 아침이 되여도 외삼촌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외숙모는 불안한 얼굴로 마당에서 부산하게 바장이였다. 아침밥을 먹지 못한 조카애들은 빌빌 울었다. 이웃집 한족아줌마가 건너와 울고있는 조카애들을 보더니 집으로 가서 삶은 옥수수를 가져다주었다. 우리는 옥수수를 정신없이 먹었다. 점심때가 되여서야 외삼촌은 마차에 실려 집으로 돌아왔다. 고주망태가 된 외삼촌을 한족사람들이 들어서 집안으로 옮겼다. 외삼촌을 싣고 온 한족사람들은 마차에서 밀가루며 감자며 콩기름 따위를 부리워놓았다. 한족사람들은 외삼촌을 두고 명의라고 하면서 엄지손가락을 내밀었다. 후에 안 일이지만 외삼촌은 심장병으로 죽어가는 사람을 살려냈던것이다. 외삼촌은 술만 마시면 병도 보지 않고 한족사람들을 욕해댔는데 순박한 시골사람들은 다 받아주었다. 외삼촌은 술을 3일만 못 마시면 외숙모와 걸고들어 싸우군 했다. 외삼촌은 술이 떨어지면 알콜을 물에 타서 마셨는데 곧잘 취했다. 외삼촌네 집에는 언제나 환자들이 찾아오군 했다. 외삼촌은 술만 마시지 않으면 도정신하고 병을 보았다.
때로는 환자네 집에 가서 병을 봐주기도 했는데 한족들이 구데기가 우글우글한 된장에다 밭에서 나는 채소를 뽑아 상에 올려놓아도 술만 있으면 거칠게 없었다. 외삼촌은 술을 마신 날이면 집에 와서 조카들을 한줄로 세워놓고 “이것들아, 왜 불알을 차고 태여나지 못했니?…” 하고 화풀이하군 하였다. 그 서슬에 기겁한 조카애들은 구석으로 도망 가서 숨었다. 자식들이 옆에 없으면 외삼촌은 외숙모와 걸고들면서 “너의 배때기에는 딸만 오골오골 들어찼어. 머저리 같은게…” 하고 비웃었고 외숙모는 “물렁불알아, 아들도 만들지 못하는 페물아…” 하고 달려들었다. 외삼촌은 외숙모와 다툰 날이면 저녁에 “아들만들기작업”을 열심히 했는데 때로는 “아들아, 내 아들아…” 하고 중얼거리기까지 하였다.

외삼촌네 집은 헐망한 초가집이였는데 비가 내리면 집안으로 비물이 새여들어와 엉망이였다. 하루는 밤에 소낙비가 쏟아져 구새목 벽으로 비물이 줄줄 슴새여 들어왔다. 외삼촌은 조카애들이 덮고 자는 이불을 가지고 지붕으로 올라가 비구멍을 틀어막았다. 하여 조카애들은 이불도 덮지 못하고 오구구 한곳에 모여 오돌오돌 떨었다. 다음날 외삼촌네 집에 찾아온 환자들이 비물이 고여있는 구들을 보고 사람들을 불러 이영을 새로 얹어주었다.

외삼촌은 옆에 내가 있든, 조카애들이 있든 개의치 않고 밤마다 외숙모를 안고 잤는데 때로는 둘이 알몸으로 뒹굴 때도 있었다. 밤일을 하다가 흥분
되면 외삼촌은 외숙모의 엉뎅이를 찰싹찰싹 갈기며 구들에서 굴러다녔다. 나는 이불을 푹 뒤집어쓰고 윽윽 질러대는 이상야릇한 소리를 들었고 조카애들은 잠에서 깨여나 두눈을 디룩디룩 굴리면서 알몸으로 뒹구는 아빠엄마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깔깔 웃어대면서 손벽을 짜락짜락 쳤다. 외삼촌은 낮에도 아이들과 나를 밖으로 쫓아내고 집안에서 정사를 질펀하게 치르군 했다. 한번은 외삼촌이 집안에서 고조에 올랐는데 마침 환자가 찾아왔다. 나는 얼른 환자가 들어가지 못하게 문을 막아나섰다. 환자는 배가 아프다고 아우성이였고 급해난 나는 집안에 대고 환자가 왔으니 일을 빨리 끝내라고 소리를 질렀다. 이윽고 문이 열리면서 머리가 부시시해진 외숙모가 나왔다. 급해난 환자는 다짜고짜 집안으로 달려들어갔다. 내가 남보기가 민망하여 외숙모를 바라보았더니 매우 흡족해하는 눈치였다. 나는 제비들이 까맣게 날아다니는 하늘을 쳐다보면서 허구픈 웃음을 웃고말았다.

외삼촌은 키도 후리후리하고 목소리도 우렁우렁한 미남이였다. 비록 의과대학을 졸업했지만 외삼촌은 한어가 류창하지 못했다. 하여 환자를 앞에 놓고 병세를 설명해주다가 저도 모르게 조선말이 튀여나가 병 보러 온 한족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 때도 있었다. 환자들은 중국어와 조선어가 뒤섞인 외삼촌의 말을 입을 하 벌리고 듣다가 답답해서 머리를 썩썩 긁을 때가 많았다. 어리둥절해서 앉아있는 환자들을 앞에 놓고 외삼촌은 되려 자기쪽에서 화를 내면서 소보다 더 미련한 놈들이라고 비웃었다. 한번은 한마을에 사는 벙어리녀인이 병 보이러 외삼촌을 찾아왔다. 어디가 아픈가고 물으니 벙어리녀인은 자기 가슴을 치면서 당장 죽는 상을 지었다. 보아하니 십중팔구 젖가슴이 아픈 모양인데 새파란 젊은 계집이라 함부로 만질수도 없어 외삼촌은 입만 쩝쩝 다셨다. 급해난 벙어리녀인은 이번에는 자기 엉뎅이를 만지다가 외삼촌의 손을 잡더니 히히 웃었다. 허지만 갈수록 심산이라고 외삼촌은 여전히 어안이 벙벙해서 어쩔바를 몰라했다. 병어리녀인은 아예 바지를 훌렁 벗더니 외삼촌앞에 희멀건 엉뎅이를 드러내놓았다. 바지에는 배설물이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오리무중에 빠졌던 외삼촌은 아마도 리질에 걸린 모양이라고 여기고 소다를 물에 풀어 약과 함께 한사발 먹였다. 배가 아파서 낑낑 매삼을 치던 벙어리녀인은 방귀를 뿡뿡 뀌더니 히쭉 웃으면서 가버렸다. 벙어리녀인은 그후부터 외삼촌네 집에 자주 놀러 왔다. 매양 외삼촌네 집에 올 때마다 벙어리녀인은 닭알도 가져오고 피나무꿀도 가져왔다. 벙어리녀인네 집에는 페병에 걸려 골골 앓는 친정어머니가 있었는데 벙어리녀인은 외삼촌을 자주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갔다. 퀴퀴한 냄새가 진동하는 벙어리녀인네 집에는 파리가 윙윙 날아다니고 대낮에도 쥐들이 나와서 작은 눈을 디룩거리며 여유작작하게 돌아다녔다. 벙어리녀인은 닭을 몇십마리나 키웠는데 외삼촌이 자기 어머니의 병을 봐주는 날이면 어김없이 닭모가지를 비틀군 했다.

하루는 마을의 왕씨성을 가진 남자가 허둥지둥 외삼촌을 찾아와서 자기 안해가 난산이 되여 죽어간다면서 엉엉 울었다. 외삼촌은 왕씨를 앞세우고 천방지축 그 집으로 달려갔다. 외삼촌이 왕씨네 집에 이르러 보니 왕씨의 안해가 고통스럽게 비명을 질러대고있었다. 산모의 상태를 살펴보니 아이의 체위가 바뀌여 발부터 나오고있었다. 자칫 산모의 생명이 위험할수 있었다. 외삼촌은 침착하게 밖으로 나온 아이의 다리를 다시 안으로 밀어넣어 머리부터 나오게 체위를 바로잡아주었다. 한시간후 산모는 순산했다. 외삼촌은 피가 묻은 손을 대충 씻고는 그때까지 옆에서 얼굴색이 새파랗게 질려있는 왕씨네 집식구들을 둘러보면서 “호라.(好了)” 하고 한마디 내뱉었다. 왕씨네 집식구들은 모두 외삼촌앞에 무릎을 꿇고 절을 했다. 외삼촌은 피식 웃고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왕씨는 너무 고마와 외삼촌에게 돈 5원을 내밀었다. 외삼촌이 돈을 거절하자 왕씨는 자기가 키우던 개를 주었다. 외삼촌이 입이 귀에 걸릴만큼 흐뭇해하는데 젠장 개가 고스란히 외삼촌을 따라오려고 하지 않고 바줄에 묶이운 머리를 휙휙 내저으며 반항했다. 외삼촌은 역정을 내며 바줄을 어깨에다 메고 개를 질질 끌었다. 숨통이 졸리운 개는 캑캑거리며 두발을 땅에 박고 뻗치면서 이리저리 풀쩍풀쩍 뛰였다. 왕씨가 나와서 뭐라고 몇마디 하자 그제야 개는 조용히 외삼촌을 따라왔다.

외삼촌이 개를 끌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동네 조무래기들이 구경거리가나졌다고 먼지를 뽀얗게 일구며 오구구 따라왔다. 집에 돌아온 외삼촌은 쇠사슬을 가져다가 개를 앞마당에 묶어놓았다. 허지만 개는 자기 집으로 돌아가려고 낑낑거렸다. 밖에 나가 지켜보던 외삼촌은 화가 치밀어 개에게 발길을 날렸다. 성난 개는 앙- 하고 외삼촌에게 달려들었다. 외삼촌은 “흐흐, 너 어디 죽어봐…” 하고 구시렁거리더니 씽하니 집안으로 달려들어갔다. 결국 외삼촌은 밸김에 칼을 들고 나와 개를 잡고말았다. 그날 외삼촌은 왕씨는 물론 마을의 지부서기까지 불러다 술상을 차렸다.

저녁켠에 시작된 술은 다음날 아침까지 끝날줄 몰랐다. 술이 거나하게 된 외삼촌은 왕씨와 마을의 지부서기를 “똥개”라고 욕했다. 개갈비를 뜯던 왕씨는 허허 웃어넘겼고 지부서기는 비위를 맞추는듯 외삼촌의 술잔에다 술을 련속 부었다. 뜬금없이 외삼촌이 왕씨를 보고 노래를 부르라고 했다. 왕씨가 창극을 엮자 외삼촌은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해 꽥 소리를 질러 끊어버렸다.

외삼촌은 이번에는 왕씨를 보고 매일 저녁 녀편네와 잠자리를 같이하는가고 물었다. 그러자 왕씨는 자기는 하루에 적어도 두번씩은 한다고 했다. 외삼촌은 왕씨를 보고 헛소리를 친다면서 까박을 주었다. 옆에 있던 마을의 지부서기가 외삼촌을 보고 당신은 밤마다 하는가고 넌지시 묻자 외삼촌은 “남자는 하루에 두번씩 해야 한다”고 큰소리를 쳤다. 왕씨와 마을의 지부서기는 눈물까지 찔끔 짜면서 웃어댔다. 나중에 외삼촌은 고주망태가 되여 왕씨와 지부서기를 개니, 돼지니 욕하면서 모두 밖으로 쫓아냈다. 외삼촌은 온 하루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그날 외삼촌은 누런 열물까지 올딱올딱 토했다.

외삼촌은 마을에서 명의로 소문이 자자했다. 외삼촌이 마을길을 걸어가면 사람들은 채씨인 외삼촌을 보고 “차이따이푸(蔡大夫)”라고 개여올리며 머리를 조아렸다. 그때마다 외삼촌은 속으로 씨알머리 없는 놈들이라고 욕하군 했다.
마을에서는 뉘 집에 불화가 있거나 경사가 있으면 외삼촌을 불러가군 했는데 외삼촌은 가정싸움을 하는 부부에게 마구다지로 쌍욕을 퍼부었다. 허지만 언제나 남자를 더 닦아세웠고 심지어 귀쌈을 때리기도 했다. 외삼촌이 대바르고 누구한테도 기울지 않았기에 마을사람들은 외삼촌을 믿었고 외삼촌의 말이라면 무조건 머리를 조아렸다. 마을에 잔치집이라도 있는 날이면 외삼촌은 어김없이 술에 곤죽이 되여 “까투리타령”을 부르면서 구들장이 꺼져라고 신들린 사람처럼 춤을 추었다.

외삼촌은 마을에서 지부서기보다도 더 위상이 높아 사람들은 외삼촌의 말이라면 성지처럼 받들었고 무슨 일에서나 외삼촌의 눈치를 보기가 일쑤였다.

현병원에 가려면 몇백리 길이요, 공사(지금은 향)병원에 가려 해도 고개 두개를 넘어야 하는 마을사람들에게 외삼촌은 하느님 같은 존재였다. 밤중이라도 급병이 생기면 외삼촌을 찾아왔고 또 외삼촌은 새벽이라도 환자만 있으면 왕진가방을 들고 달려가군 하였다. 한번은 마을의 좌상령감이 피를 토하면서 쓰러졌다.

외삼촌이 헐레벌떡 달려가니 좌상로인네 집은 울음소리가 진동했다. 바닥에 벌건 관을 들여다놓았고 수의까지 갖춰놓고있었다. 좌상로인의 얼굴은 백지장처럼 창백했다. 그날 외삼촌은 숨이 간들간들하는 좌상령감에게 자기 피까지 뽑아 수혈하고 기절해 넘어졌다. 외삼촌이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니 좌상령감네 집에서 양을 잡아 술상을 차려놓고 기다리고있었다. 피까지 토하던 령감이 기사회생했던것이다. 외삼촌은 비척거리며 상에 다가앉아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이윽고 외삼촌이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자 좌상로인네 집에서 술 30근을 술통에다 담아서 주었다. 외삼촌은 술통을 가지고 코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환자집에서는 또 외삼촌이 몸이 허약하다면서 사슴사양장에 가서 록용과 사슴피를 얻어다가 외삼촌네 집으로 가져왔다. 허나 외삼촌은 며칠후 마을의 지부서기가 중병에 걸리자 록용과 사슴피를 지부서기에게 주었다.

그해 여름, 장마철이 다가오면서 비가 련속 3일간 쏟아져 외삼촌네 초가집 뒤벽이 무너지는 사고가 생겼다. 마을사람들은 마을 뒤쪽 높은 곳에다 집한채를 지어주었다. 하여 외삼촌은 비록 초가집이지만 새집에서 살게 되였다.

가을에 내가 외삼촌네 집으로 가니 이불장도 생기고 밥상도 새것이였다. 그리고 마당 동쪽에 따로 한칸짜리 사랑채가 있었는데 그것은 외삼촌이 환자의 병을 보는 진찰실이였다. 외삼촌네 집에는 매일 환자들로 붐비였는데 때로는 고개너머에 있는 사람들까지도 찾아왔다. 이미 딸 셋을 낳았는데도 외숙모는 또 만삭이 되여있었다. 외삼촌은 아들을 보는것이 소원이였다. 하지만 두달후 외숙모가 해산을 했는데 또 딸이였다. 외삼촌은 술만 마시면 외숙모를 보고 딸밖에 낳을줄 모르는 병신이라고 욕질했다. 짜장 외삼촌은 딸부자가 되였다.
나는 예전처럼 외삼촌의 딸들-조카들을 데리고 서진평역으로 갔다. 조카애들은 소나무밑에 있는 걸상에 앉아 지나가는 기차를 보면서 “저 기차가 어디로 가는가? 화물차안에는 무엇이 실려있는가?”고 물었다. 내가 저 기차를 타면 북경까지 갈수 있다고 하자 조카애들은 와- 하고 환성을 질렀다. 가을볕은 도글도글 영글어가고 화단에서는 코스모스가 가을바람에 살랑살랑 춤 추고있었다.

가을이면 서진평마을에서는 외삼촌에게 한해의 보수로 밀가루며 도목나무를 실어왔고 세밑이 되면 외삼촌은 돼지를 잡는 집에 불려다니면서 매일 술에 취하여 세월을 보냈다. 외삼촌네 집에는 마을사람들이 가져온 밀가루며 돼지고기가 넘쳐났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고 언제인가 외삼촌은 목에 개구리뼈가 걸린 환자를 치료하다가 그만 환자가 죽는 사고를 내고말았다. 애초에 외삼촌은 환자의 상태를 보고 시간을 끌면 자칫 환자가 죽을수 있으니 빨리 차를 불러서 현병원으로 가라고 하였다. 허지만 환자가족은 죽든지살든지 외삼촌에게 맡기니 알아서 해달라고 사정했다. 급해난 외삼촌이 환자의 목구멍에 손가락을 넣어 만져보니 갈구리 같은 개구리뼈가 살속에 깊숙이 박혀있었다. 목구멍은 이미 부종이 와서 벌겋게 부은 상태였고 기도가 막혀 숨소리마저 간간한데다가 얼굴에 검은 반점이 다닥다닥 생기면서 심장페색으로 전이되고있었다. 빨리 수술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하지만 산골마을에서 수술을 한다는것은 위험천만한 일이였다. 환자가 수술중에 출혈이라도 생기면 생명을 잃을수 있었던것이다. 그 와중에 목이 막혀있는 환자는 더 버티지 못하고 기절하였다.
외삼촌이 재차 손가락을 환자의 목안에 집어넣고 숨이 통하게 하자 환자는 컥! 피를 토하더니 그만 죽고말았다. 환자가족은 곱지 않은 눈길로 외삼촌을 노려보았다. 소식을 듣고 지부서기가 달려왔다. 전후사연을 듣고난 지부서기는 외삼촌의 잘못이 아니라고 했다. 외삼촌은 비록 자기의 실수로 환자가 죽은것이 아니지만 정작 사람의 시체를 앞에 놓고보니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삽시에 외삼촌이 실수로 사람을 죽였다는 소문이 마을에 쫙 퍼졌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소문이란 워낙 새끼를 치고 가지를 뻗기 마련이여서 얼마후에는 린근마을까지 파다하게 알려졌다.

그후부터 외삼촌네 집에는 환자들이 뜸해졌다. 결국 외삼촌은 지부서기를 찾아가서 마을을 떠나겠다고 했다. 아닌밤중에 홍두깨 내밀듯하는 외삼촌의 말에 지부서기는 한동안 어안이 벙벙해있다가 그제야 정신이 들었는지 한사코 만류하였다. 마을사람들이 외삼촌네 집으로 찾아왔다. 그들은 한결같이 누가 뭐라든 외삼촌이 서진평마을을 떠나선 안된다고 말렸다. 벙어리녀인도 왔고 왕씨도 왔고 마을의 좌상로인까지 왔다. 좌상로인은 사고를 치지 않는 의사가 세상에 어디 있는가고 하였고 왕씨는 “차이따이푸(蔡大夫)”가 고의적으로 환자를 죽일 사람이 아니라고 목에 피대를 세웠다. 외삼촌네 집은 담배연기가 자욱했고 사람들은 고개를 푹 숙이고 앉아있는 외삼촌을 측은하게 바라보면서 제발 마을을 떠나지 말아달라고 빌었다. 산골사람들의 간곡한 애원에 외삼촌은 결국 마을을 떠나지 않고 눌러앉기로 했다.

서진평마을의 겨울은 일찌기도 찾아왔다. 동지를 코앞에 둔 겨울해는 슬쩍 얼굴을 보이고는 산너머로 도망 가버렸다. 그해는 눈도 많이 내렸다. 마을길이 막히고 산에 살던 꿩과 노루가 마을로 내려왔다. 서진평마을 사람들은 꿩을 잡고 노루를 잡는다고 설쳐대면서 새벽부터 눈길을 헤치고 다녔다.

그해 겨울, 외삼촌네 둘째딸이 급성페염에 걸려 죽었다. 외삼촌은 3일 동안 두문불출하고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외숙모는 자기 자식도 구하지 못하는 사람이 무슨 의사인가고 하면서 바락바락 악을 썼다. 외삼촌은 반년 사이에 많이 거칠해지고 술도 줄였다. 외삼촌이 푹 꺼져있자 급해난것은 마을사람들이였다. 서진평마을 사람들은 한사코 거절하는 외삼촌을 설득하여 술장소로 데리고 다녔다. 허나 외삼촌은 술을 마셔도 예전처럼 과음하지 않았고 구성지게 뽑아대던 노래도 더는 부르지 않았다.

4년후, 외삼촌은 한족마을에서 계속 살다가는 자식들을 모두 무식자로 만들겠다면서 서진평마을을 떠났다. 외삼촌이 떠나는 날, 마을사람들은 동구밖까지 따라나와 배웅하면서 울었다.

그날따라 가을비가 구질구질 내리고있었다…


 
 

 
Total 7
번호 제   목 글쓴이 날짜 조회
7 연변문학 2017년 2호 추천작품-서진평(김동규) 작가협회 03-16 2719
6 연변문학 2017년 2호 추천작품-물어볼게 있어요(박일) 작가협회 03-16 4949
5 연변문학 2017년 2호 추천작품-누가 고양이를 죽였나?(장선자) 작가협회 03-16 5018
4 연변문학 2017년 1호 추천작품-동주의 남자(김혁) 작가협회 02-23 2795
3 연변문학 2017년 1호 추천작품-걸어다니는 나무(조은경) 작가협회 02-23 2694
2 "화림문학상"수상작품-바람의 뜰(박은희) 작가협회 01-25 2934
1 “화림문학상"수상작품-복숭아씨 (박련숙 ) 작가협회 01-25 3138
 
 
and or

Copyright © 2009 延邊作家協會 all rights reserved

地址: 吉林省延吉市公園路000號 郵編: 133000 吉ICP備1200596號
Tel: 0433-200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