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속자 : 26 (회원 0)  전체순위 출근기록  오늘 606 어제 595 최대 928 전체 660,413  
중국조선족작가넷

  ● 延邊作家協會主瓣  

● 중국조선족문학포탈사이트

중국조선족작가넷 > 습작원지 > 소설문학 > 연변문학 2017년 2호 추천작품-물어볼게 있어요(박일)
  공지사항    협회소개    문학광장    문단동태    문화카페    작가/평론    습작원지    기업광장    문학상  
  중국조선족작가넷 LOGIN
  
  
  ID저장  자동로그인
회원가입 아이디/비밀번호 찾기
시가문학
소설문학
수필문학
아동문학
기타
 소설문학 베스트 10
 
작성일 : 17-03-16 16:17
연변문학 2017년 2호 추천작품-물어볼게 있어요(박일)
 글쓴이 : 작가협회
조회 : 4,948  

중편소설

                              물어볼게 있어요

                                                   박일



1


-선생님, 선생님!

이른아침, 안해가 다급히 깨우는 바람에 나는 눈을 번쩍 떴다. 그런데 왼쪽눈등에 무엇이 달라붙은것 같아 시야가 가리워졌다.

-어머? 선생님 얼굴이 왜 이렇게 됐어요? 예? 어제밤 누구한테 맞은거 아니예요? 누가 이랬어요?

-어허, 아침부터 왜 이렇게 부산을 떠오? 그런거 아니요.

-그런거 아니면? 어디 선생님 절로 얼굴을 좀 보세요.

눈살을 찌프리고 잔뜩 울상이 된 안해는 탁상우에 놓여있는 거울을 가져다 내 손에 쥐여준다.

순간 속이 꿈틀했다. 밤새 얼굴이 이렇게 흉측하게 변할줄은 전혀 몰랐다.

어제 밤늦게 집에 도착한 나는 조심스레 출입문을 열고 방에 들어섰다.

안해가 거실에 없었다. 나는 도적고양이처럼 발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거실을 지나 침실문을 빠끔히 열고 안방을 들여다보았다. 침대우에 모로 누워있는 안해는 보던 의학서적을 한손에 쥔채 쌔근쌔근 자고있었다. 다행이였다. 나는 제꺽 세면실로 들어가 안으로 문을 잠그고 거울부터 들여다보았다. 코피가 흐르고 입술이 터져 얼굴이 마치 지도를 그려놓은것처럼 시꺼먼 피자욱으로 얼럭덜럭하였다. 나는 얼른 수도꼭지를 틀어놓고 부지런히 얼굴을 닦았다. 다시 거울을 들여다보니 오른쪽입귀가 조금 째진 흔적이 있을뿐 다른데는 괜찮았다. 그제야 시름을 놓고 침실로 들어가 안해곁에 조용히 누웠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누룩을 넣고 밤새 숙성시킨 밀가루반죽처럼 눈등으로부터 턱까지 울긋불긋 부어올랐는데 오른쪽볼은 계란을 입에 문것 같았고 입술은 저팔계 주둥이처럼 삐죽이 튀여나와있었다. 게다가 군데군데 시퍼렇게 멍까지 들어 마치 참대곰을 방불케 했다.

-어제저녁 선생님은 한국신문사에서 온 손님들을 접대한다고 했잖아요?

-그랬지, 아마 내가 술상에서 술이 좀 과했던 모양이요. 보아하니 음식점 2층에서 계단을 내려오다가 그만 다리를 헛디뎌 허망 아래로 꼬꾸라졌던것 같아. 이것 좀 봐, 거짓말인가?

나는 걸려있는 양복호주머니에서 다리 하나 부러진 안경을 꺼내 안해한
테 보여주었다.

-어머? 안경알에도 피가 묻었네요. 피를 많이 흘렸던가보죠?

-괜찮아, 계단에 코방아를 찧어 코피가 조금 났댔어.

-거짓말! 선생님의 입귀도 타박상을 입어 심하게 터졌는데두요?

-아갸갸!…

안해가 엄지와 식지로 내 입술을 벌리자 나는 반사적으로 자라처럼 목을 움츠리며 바사지는 소리를 냈다.

-병원에 가자 해도 선생님은 안 가실거고…

안해는 주방으로 나가더니 손에 계란 한알을 들고 왔다. 그리고는 계란으로 멍이 든 내 얼굴을 문질러주기 시작했다.

-오늘 윤대무기자의 결혼식이잖아요. 신문사 부사장 겸 부총편집이란게 차마 이런 얼굴로는 결혼식에 못 가시겠네요?

-그럼 못 가구말구, 오늘 당신이 나를 대신하여 결혼식에 가주면 안될가? 당신도 윤대무기자를 잘 알잖아? 그리고 우리 신문사 사람들도 거의다 안면이 있고.

-그럴수 밖에 없겠네요. 부조는 얼마나 할가요?

-한 오백원 해.

-그런데 신문사분들이 박사장은 왜 참석하지 않느냐고 물으면 뭐라고 할가요?

-뭐라고 하다니? 간밤에 계단을 내려오다가 발을 헛디뎌 얼굴을 좀 상했다고 사실 그대로 말해야지.

-사실 그대로요?

안해는 왜 돌을 보고 계란이라고 고집 부리느냐는듯 고개를 살살 저었다.



2


그렇게 나 대신 신문사 윤대무기자의 결혼식에 갔던 안해가 점심무렵이 지나자 뽀르르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안해의 거동이 여간 자연스럽지 않았다.

-왜? 결혼식이 별로 볼게 없었어?

-그런건 아니고요.

-그런게 아니면?

안해는 의자를 끄당겨다 내가 누워있는 침대머리에 정색하고 앉는다.

-한가지 물어볼게 있어요.

안해는 나와 사귈 때부터 나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더니 이젠 결혼한지 3년이 넘었는데도 그냥 선생님이다. 왜 듣기 좋은 “오빠”나 “여보”로 호칭을 바꾸지 않느냐고 물으면 “선생님”이 입에 올라 그게 편하단다.

-선생님, 선생님이 어제밤 계단을 내려오다 발을 헛디딘게 정말 맞아요?

-어허, 왜 또 그 소리요? 맞다는데…

-그런데 어째 신문사에 선생님이 계단에서 굴러떨어지는걸 본 사람이
없을가요?

-그거야 그 음식점에 나 혼자만 남아있었으니 그렇지. 처음엔 손님들과 같이 2층에서 내려와 밖으로 무리 지어 나왔어. 헌데 그만 벗어놓은 양복을 들고 내려오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더군. 그래서 다시 2층으로 올라갔던거야.

-엊저녁 술 마시는 장소에 진기자도 있었지요?

-진자웅이? 어, 그래 있었지. 어제 한국손님들을 접대하는 자리에 우리 기자들도 십여명이나 앉았거든. 두상을 차렸으니까. 그속엔 자웅이도 있었어.

-혹시 어제밤 선생님이 진기자와 싸운건 아니예요?

-내가? 그 녀석하구? 왜 싸우는데? 누가 그래?
-술상이 끝나 한국손님들을 보낸 다음 선생님과 진기자가 어디론가 가는걸 본 사람이 있다던데요? 그것도 선생님이 가지 않겠다고 한사코 버티는걸 진기자가 버럭버럭 성을 내며 마구잡이로 선생님의 팔을 끌고 어둠속으로 사라졌다던데요?

-어둠속으로? 어… 그 말을 들으니 어슴푸레 생각나네. 맞아, 그 녀석이 밖으로 나를 데리고 나와서 지난달 자기가 쓴 중점원고가 다섯편인데 왜 총편사무실에서 세편으로 했냐구 따지더군.

-그게 아니라 마구 주먹이 날아왔겠죠?

-아하, 이 사람 왜 이래? 정 믿지 못하겠으면 자웅이 그 녀석한테 물어봐.

-이미 진기자한테 물어봤거든요.

-뭐? 물어봤다구?

나는 속이 꿈틀했다.

-그래 그 녀석이 뭐래?

안해를 보는 내 눈은 점점 황소눈처럼 커졌다.

-아니라는 소린 안하던데요.

-안해? 그럼 그 녀석이 자기가 날 때렸다고 해?

-“그걸 왜 저한테 물어봐요. 형한테 물어보면 잘 알텐데요.” 이렇게만 말하던데요.

-나한테 물어보다니? 난 그런 일 없다고 하잖아. 그리고 그 녀석도 자기가 때렸다는 말은 없었지?

나는 번연히 아는 주정을 하며 안해앞에서 억지를 부리는수 밖에 없었다.

-진기자가 간밤에 술을 많이 마셨는지 오늘도 입에서 술냄새가 많이 나더군요. 그리고 함복희란 녀자도 결혼식에 왔더군요.

-왜 날 그런 눈으로 봐? 그 녀자도 윤대무하고 잘 아는 사이니 결혼식에 오는건 당연하지. 안 그래?

-제가 볼라니 그 녀자와 진기자가 그림자처럼 그냥 붙어다니더군요.

-두 사람 좋아하는 사이라고 소문났으니 그것도 당연한거 아닌가?

-전 선생님께 또 물어볼게 있어요.

-얼마든지 물어봐.

-혹시 선생님하고 진기자 그리고 오늘 결혼식에 온 함복희란 녀자, 이렇게 세 사람 사이에 무슨 말 못할 비밀이라도 있는게 아닌가요?

-아하 참, 당신 오늘 왜 착한 박사답지 않게 갑자기 터무니없는 의심을 하면서 이래? 나한텐 당신에게 숨길 비밀 같은게 없다니까. 오늘 이야긴 이만 끝내자.

방귀 뀐 놈이 성을 낸다고 나는 억울하고 분해서 씨근거리는체하며 두다리만 가리웠던 이불을 확 끌어당겨 머리까지 덮어썼다.



3


안해는 언제부턴가 내가 자기와 만나기전에 함복희와 련애를 했다는 사실을 알고있는것 같았다. “선생님, 선생님은 도리조선족유치원의 함복희원장을 잘 아시죠?” “어, 그래 알지. 그런데 왜?” 내가 이랬더니 “아니, 그 녀자도 예전에 신문사 기자로 있었다면서요?” 라고 한다. 그 말에 그래. 하고 머리를 끄덕이니 기사도 아주 잘 썼다면서요, 그랬나요? 하며 안해는 눈도 깜빡이지 않고 내 얼굴만 빤히 쳐다본다. 그래, 그 녀자 글을 참 재치 있게 썼어. 그런데 어째서 그 좋은 기자직업을 그만두고 유치원으로 갔을가요? 그걸 내가 어찌 알아? 내가 신경질적으로 거칠게 대답하는데도 안해는 기관총을 쏘듯 입에서 물음표가 튀여나온다. 선생님은 그때 총편사무실 주임이였으니 응당 알고있어야 하잖아요? 허, 총편사무실 주임이면 남의 개인사정도 알아야 하나? 그리고 의사가 왜 갑자기 이런걸 따져묻지? 내가 언짢은 기색을 지으며 목소리를 높여서야 안해는 한풀 꺾였는지 선생님이 모른다는 소리가 이상해서 그래요. 하면서 말을 그쳤다.

신문사엔 그림자도 얼씬하지 않는 안해가 언제부턴가 자웅이와 복희가 련애를 하고있다는 사실도 알고있는 눈치였다. 선생님과 한고향 사람이라는 진기자가 저와 동갑이더군요. 그래 맞어, 나보다 네살 아래야. 그럼 복희원장보다는 세살 어리겠네요? 나는 안해가 입을 싸쥐고 키득키득 웃는 의미를 알면서도 모르는척했다. 그런데 왜 웃어? 선생님, 소문 못 들으셨어요? 무슨 소문? 두 사람 지금 련애를 한다면서요. 안해는 나한테 눈을 흘겼다. 번연히 알고있으면서도 복희 그 녀자의 일이라면 왜 자기한테 자물쇠를 꾹 잠그느냐 하는 의혹 담긴 눈빛이였다.

오늘아침, 안해는 간밤에 내가 계단에서 굴러떨어졌다고 하니 도리머리를 저었다. 얼굴 여러곳에 상처가 난것을 보고 분명 누구한테 얻어맞았을거라고 판단했던것이다. 그 와중에 안해가 결혼식에 갔다가 누군가 어제저녁 내가 진자웅한테 끌리워 어디로 가는걸 보았다는 소리를 듣고 바짝 신경이 곤두섰던 모양이다. 그래서 몰래 기회를 노렸다가 자웅이를 붙잡고 어제저녁 진기자가 우리 남편을 그렇게 만들어놓았는가고 물어봤을거고 자웅이 그 녀석은 형한테 직접 물어보라고 한마디 턻은 소리를 줴쳤을게 분명하다.

그랬다. 나는 어제저녁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웅이 그 녀석의 주먹에 얼굴을 북처럼 두들겨맞았다.

-형, 내 오늘은 단단히 형을 좀 버릇 고쳐줘야겠어.

-녀석, 너 술이 과했구나.

-맞아, 형을 한번 패주려고 술을 많이 마셨어.

-왜?

-형은 신문사의 부사장으로는 자격이 있을는지 모르겠지만 인간으로서는 쓰레기야, 쓰레기!

-이 녀석이 갑자기 왜 이래?

-왜 이래? 개새끼!

순간 눈앞에서 불이 번쩍 일었다. 녀석의 망치 같은 주먹이 나의 눈등을 사정없이 강타하였던것이다.

-형도 불알 찬 남자야? 남자라는게 어떻게 복희누나의 비밀을 함부로 퍼뜨려? 개새끼!

이번엔 갑자기 코마루가 찡 저려났다. 단통 코피가 콸콸 쏟아져나왔다.

-이 녀석아, 내가 복희의 비밀을 도대체 누구한테 말했다는거냐?
나는 자웅이가 말하는 그 비밀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있었다. 그래서 한
손으로 피 흐르는 코를 움켜쥐고도 악에 받쳐 버럭버럭 고함을 질렀다.

-그게 어떤 일인데?… 그렇게 중요한걸 형이 소문내고 다녀? 에- 씨팔!
세번째로 날아온 주먹에 나는 벌렁 뒤로 넘어졌다. 눈앞이 아찔해났다.

하지만 나는 이를 악물고 허우적거리며 땅을 짚고 일어나 앉았다. 그리고는 자웅이를 향해 삿대질을 했다.

-이 미친놈아, 똑똑히 들어. 난 네가 말하는 그 비밀을 누구한테도 소문낸적 없어.

-뻔뻔스럽긴, 형도 똑똑히 들어. 이제 그런 말이 또 한번 내 귀에 들리는 날엔 형을 아주 죽여버릴거야!

자웅이는 호주머니에서 휴지를 꺼내 내앞에 던졌다. 달이 오른 녀석의
눈에도 피투성이가 된 내 얼굴이 한심했던 모양이다. 그리고는 잠간 서서 씩씩거리더니 어디론가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정말 복희의 그 비밀을 누구한테도 말한적이 없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자웅이 그 녀석이 도대체 누구한테서 무슨 말을 주어듣고 길길이 뛰는걸가?

어제밤 자웅이한테 부옇게 얻어맞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안해곁에 누워서도 오래도록 한가지 생각에만 골몰했다.



4


자웅이는 나와 한마을에서 살았다. 우리 마을은 60여세대가 모여사는 자그마한 산간마을이였다. 자웅의 아버지는 오래동안 생산대 대장을 하였기에 지금까지도 마을에선 진대장이라고 부르고있다. 그런 진대장네 큰아들인 자웅이가 서안에 있는 정법대학을 졸업하고 법원이나 검찰원 계통에서 직업을 찾는것이 아니라 내가 근무하고있는 신문사에 와서 기자를 택하는것이였다.

“임마, 너는 어째 변호사나 검사가 되지 않고 여기로 온거냐?” 내가 이랬더니 녀석은 “그럼 형은 어째 중국인민대학을, 그것도 신문학석사까지 졸업하고 그 좋은 북경에 남지 않고 할빈에 왔소?” 하고 반문했다. 그래서 “나야 중앙텔레비죤방송국으로 들어가려다가 되지 않으니 밸김에 여기로 온거지.” 라고 했더니 녀석은 “난 형이 여기 있기에 형을 따라온거요. 형은 옛날부터 우리 동네 자랑이고 우리 후배들의 우상이였잖소.” 이랬다.

하긴 자웅이의 말이 틀린것은 아니였다. 나는 소학교부터 고중까지 일등을 놓친적이 없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우리 마을에서 백여리 상거한 현조선족중학교에서는 중국인민대학에 붙은 내가 가장 훌륭한 명문대학에 간것으로 기록되여있다. 그래서 자웅이는 어릴적부터 어른들한테서 “너 좀 배나무집 명주형을 따라배워라.”, “네가 명주형이 하는 절반만 따라가도 얼마나 좋겠냐?”는 말을 밥 먹듯 들어왔고 대학입학지원서에도 제1지망란에 내가 다닌 중국인민대학을 써넣었댔다. 헌데 아쉽게도 점수가 몇점 모자라 제2지망인 서안정법대학으로 가게 되였다.

자웅이는 머리가 총명하면서도 정이 많았고 또 한번 마음을 먹었다 하면 변할줄 모르는 직심스러운 녀석이였다. 그런 녀석이 어디서 배웠는지 조선장기를 무척 잘 놀았다. 그래서 신문사에 입사하자마자 단통 함복희를 누나라고 부르며 그녀와 친해지게 되였다. 한것은 함복희는 비록 녀자지만 남자들의 오락인 장기를 아주 즐겼는데 그것도 고수여서 그녀의 상대가 되는 사람이 거퍼 몇이 안되였다. 그중 손꼽히는 사람이 바로 금방 입사한 자웅이였다. 그래서 점심식사후이면 숱한 사람들이 빙 둘러서서 함복희와 자웅이가 장기를 두는것을 구경하군 하였다.

내가 뉴스부 부장으로 있을 때였는데 언젠가 나는 함복희와 자웅이를 데리고 가목사시로 취재를 떠난적이 있었다. 복희와 자웅이는 기차에 앉아 가목사로 가는 도중에도 장기의 기원이 어떻다는둥, 초패왕과 한고조의 각축전이 어떻다는둥 하며 그냥 장기에 대한 이야기만 늘어놓았다. “자웅기자는 장기에 어떤 특성이 있다고 봐요?” “음- 우선은 재밌는 오락이지요.” “또?” “그담엔 마주앉아 겨루는 두 사람 모두 깊이 생각할수 있게 하죠. 그리고 선견과 지혜를 필요로 하고 주의를 집중할수 있게 하죠.” “그다음엔요?” “그다음엔 잘 생각나지 않는데 이젠 복희누나가 말해봐요.” “호호, 다 옳은 말인데 그밖에 찬스를 포착하되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운것, 이 한가지가 더 첨부돼야 하지 않을가요?” “맞아요. 누나, 그것이 중요한 특성이지요…” 기차에서 두 사람은 오래동안 장기만 가지고 웃고 떠들었다.

우리는 가목사에 이르러 호텔을 잡았는데 나와 자웅이가 한방을 쓰고 복희는 녀자여서 혼자 방 하나를 차지하게 되였다.

-형!

자웅이가 나를 보며 느물느물 웃었다.

-내 눈을 꼭 감고있을테니 얼른 복희누나방에 건너가보오.

-이 녀석 무슨 허튼소리야?

나는 짐짓 성을 내는척했다. 허지만 녀석은 느물거리며 “불처럼 뜨거운 형님 마음 다 아오. 마음 같아서는 단둘이 손 잡고 취재를 다니고싶은데 사람들의 눈이 무서워 어디에 보리알이 끼우듯이 하등 필요도 없는 나를 둘러리로 데리고 온거지. 그렇지?” 하면서 눈을 끔벅했다.

그래서 내가 껄껄 웃었더니 이번엔 내곁으로 바투 다가오며 형은 복희누나의 어디가 그렇게 마음에 드오? 하고 캐여묻는다. 그럼 네 눈에는 복희의 어디가 예쁜것 같냐? 하고 내가 되물었더니 녀석은 미리 준비하고있은듯 우선 몸매가 물찬 제비처럼 쭉 빠졌고 얼굴은 너무 예쁘게 생겼다고는 할수 없지만 오관이 단정하고 살결이 맑고 복 있게 생겼고 음- 또 지적이고 반듯하고 마음이 착하고… 하며 념불 외우듯 입에서 줄줄 미사려구를 쏟아냈다. 그래서 내가 야야, 좋은건 다 갖다붙여라. 하며 녀석이 더 말을 못하게 손을 번쩍 머리우로 쳐들어 한매 때리는 시늉을 했다.

-여하튼 형이 복희누나를 안해로 맞는다면 천생배필일것 같소. 솔직히 형이 진짜 장가를 잘 가는 셈이지 뭐.

-이 녀석, 이젠 그만 주둥이를 다물지 못할가?

나는 주먹으로 자웅이의 어깨를 한매 쥐여박았다.

그 이튿날 아침, 우리는 기차를 타고 탕왕조선족향으로 가려고 기차역으로 나가게 되였다. 그런데 호텔에서 시간을 지체하다보니 발차시간이 눈앞으로 다가오고있었다. 아직도 기차역 개찰구까지 가려면 수백메터는 더 가야 하는데…

-객들이 기차에 막 오르네. 형, 우리 철대문을 뛰여넘기요.

자웅이의 제의에 우리는 지름길을 택해 기차역 서쪽에 있는 철대문을 뛰여넘기로 했다. 내가 먼저 철대문에 기여올라가 훌쩍 안으로 뛰여내렸다. 그다음 운동원체질인 복희도 어느새 날렵하게 철대문을 넘었다. 문제는 몸집이 뚱뚱한 자웅이였다. 녀석은 씩씩거리며 철대문꼭대기에 바라오르더니 굼벵이처럼 어질어질 기여내렸다. 헌데 녀석의 발이 아직 땅에 채 닿기도전에 “꼼짝 말앗!” 하는 고함소리와 함께 왼팔에 붉은 완장을 낀 아낙네 둘이 나타나더니 철대문에 둥둥 매달려있는 자웅이의 다리를 하나씩 움켜잡았다.

-표도 안 사고 도적기차를 타려고? 어림도 없어!

얼굴이 퍼르뎅뎅한 두 아낙네가 목에 피대를 세우며 고아댔다.

그래서 내가 해석을 하려고 철대문쪽으로 되돌아왔다. 그런데 “이놈도

한통속이야!” 하며 한 아낙네가 잡고있던 자웅이의 다리를 놓고 성큼 다가와 나의 팔을 꽉 움켜쥐였다. 그다음은 무슨 말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복희도 안타까와 저만치 멀리서 발을 동동 구르고있었고 나 역시 막무가내로 달려드는 아낙네들때문에 단 가마우의 개미처럼 어쩔바를 몰라했다. 바로 이때 철대문에 매달려있던 자웅이가 허허허 하고 갑자기 턱을 쳐들고 웃음을 터뜨렸다.

-아주머니들 왜 이러세요? 이게 뭔지 한번 보여줄가요?

자웅이는 양복호주머니에서 기자증을 꺼냈다.

-우리는 신문사 기자들입니다. 기자가 뭘 하는 사람들인지 아시지요? 우린 지금 생활체험을 하고있는중입니다.

그 소리에 두 아낙네는 닭 쫓던 개 지붕을 쳐다보듯 눈이 휘둥그래서 우리 셋을 하나하나 훑어보았다.

-형, 누나, 기자증이 정말 쓸모가 많아, 그렇지?

자웅이가 기차에 오르며 시뚝해서 하는 말이였다.

자웅이가 만들어낸 이 에피소드는 우리 신문사의 한담거리로 되여 두고두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고있었다.

그런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친형제처럼 사이 좋게 지내던 자웅이녀석한테 내가 얻어맞다니?…



5


안해가 저녁상을 차려놓았다고 알렸다. 내가 침대에서 일어나서 얼굴을 거울에 비춰보니 참대곰의 눈 같고 저팔계의 주둥이 같이 흉측하였다. 나는 계란으로 멍이 든 얼굴을 문지르며 안해가 차려놓은 식탁앞으로 다가갔다.

식탁에는 된장찌개, 고등어구이, 더덕구이, 명태무침, 건두부볶음이 두루 올라있었다. 안해는 나와 결혼하던 그해까지도 할빈의과대학에서 박사공부를 하다보니 작식을 할줄 몰랐다. 그래서 결혼후에 배운 된장찌개를 제외하고는 보나마나 어느 조선족음식점에 전화를 걸어 배달시킨것이 뻔했다. 안해는 량손에 와인잔 두개와 목이 긴 포도주병을 들고 오더니 알맞춤하게 부었다.

-선생님, 자!-

안해가 술잔을 들었다. 나도 잔을 들어 안해의 잔과 부딪친 뒤 한모금 마셨다. 그리고는 저가락으로 안주를 이것저것 집어먹었다. 허지만 안해는 저가락을 손에 쥔채 안주는 집을념 않고 나의 얼굴만 빤히 쳐다보고있었다.

-왜 그래?

-제가 뭐라나요? 아무 말도 안했는데요.

-그 눈이 지금 말하고있잖아?

-저의 눈이요? 뭐라고 하는데요?

-언제 봐도 너무 잘생긴 내 남편의 얼굴이 어쩜 이 지경이 되였을가?

야- 아프겠다. 이러지.

-호호, 그저 그뿐일가요?

-물론 더 있지.

-그럼 또?

-낮에 결혼식에 가서 들을라니 어제밤 누군가 분명 선생님과 진기자가

어디론가 가는걸 보았다고 하던데… 그리고 진기자와 물어봤는데 자기가 그러지 않았다는 말은 하지 않는걸 봐서 십중팔구는 진기자한테 맞았을것 같은데 왜 아니라고 딱 잡아뗄가? 그렇게 잡아떼는 리유가 뭘가? 이러는거지.

-면바로 맞췄어요. 지금 저의 눈에서 딱 그런 말이 흐르고있어요.

-그러니까 눈으로만 말하면 안된다는거야. 생각을 많이 굴리며 머리로 말해야 하고 상대가 납득할수 있도록 가슴으로 말해야 하는거야.

나는 또 억지를 부리며 궤변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안해는 내가 그럴수록 도리머리만 그냥 젓는다. 내가 아무리 억지를 부려도 도저히 믿을수 없다는 분명한 태도를 나한테 보이려고 시위하고있는것이다. 안해는 와인잔을 들고 혼자 한모금 마신다. 그리고는 안주를 집기 시작한다. 그러던 안해가 갑자기 “아, 정말!” 하고 조금 놀라는 표정을 짓더니 나를 또 뚫어지게 바라본다.

-오늘 윤기자의 결혼식에 갔는데 말이예요. 저는 8호상에 앉고 곁에 있는 9호상엔 누가 앉았는지 아세요? 진기자와 함복희원장이 나란히 앉았더군요.

이 사람 또 무슨 말을 하려고 이럴가? 나의 귀는 바늘끝처럼 예민해졌다.

-그런데 그 상에 앉은 신문사분들이 함복희원장이 전에 신문사에 있을
적에 신문기사를 아주 재치 있게 잘 썼다고 잔뜩 춰주더군요. 그러면서 그 녀자가 쓴 “요즘 사람들은 구차해서 돈밖에 남은게 없다”는 신문기사가 전국우수기사 1등상까지 받았노라고 말합디다. 그런데 선생님?

-왜?

-“요즘 사람들은 구차해서 돈밖에 남은게 없다”는 그 기사는 선생님과 함복희원장이 같이 쓴 글이 아닌가요?

당신 그런것도 다 알아?

나는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내뱉지 않고 도로 꿀꺽 삼켜버렸다.

그 일은 안해와 선을 보기 2년전에 있은것인데 신경과의사가 그런 “비밀”까지
속속들이 알고있다니? 인제 보니 이 녀자는 의사가 아니라 정탐가가 되여도 손색 없겠는데… 하지만 나는 겉으로 내색을 내지 않고 아주 태연스러운체하였다.

-그래 맞아, 비록 우리 두 사람이 취재대상의 부동한 직업, 부동한 년령에 따라 저마끔 취재를 했지만 처음 아이디어도 내가 생각해낸거고 마지막 집필도 내가 한거였어.

나는 나와 함복희란 녀자 사이엔 숨길것이 전혀 없음을 낱낱이 보여주려는듯 안해가 모르는 일까지 들먹이며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6


나와 함복희는 같은 해에 함께 신문사에 입사하였다. 복희는 나보다 한살 아래였다. 당시 신문사 총편사무실 산하에는 뉴스부, 사회부, 경제부, 주간부 등 6개 부서가 있었는데 처음에 나와 복희는 함께 뉴스부에 배치되였다.

그런데 나는 신문사에 발을 들여놓은지 얼마 안되여 젊은이들가운데서 꽤나 오만하고 건방진 청년으로 알려졌다. 그도그럴것이 신문사에는 석사연구생과정을 졸업하고 입사한 젊은이들이 별로 많지 않았는데 나는 중국에서 몇손가락 안에 꼽히는 중점대학교 석사, 그것도 신문학석사공부를 마쳤으니 말이다. 허지만 눈에 콩깍지가 씌여졌는지 함복희만은 나를 싫어하지 않았다.

건방지고 안하무인이여서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고있는 나를 오히려 은근히 좋아하고 따르는 눈치였다. 후에 우리는 이 일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눈적이 있었다. 복희는 나를 처음 보는 순간 앞으로 큰일을 할 사람으로 보였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그럼 나는 천리마이고 복희는 백락이였단 말인가? 했더니 그럼요. 하고 깔깔 웃었다.

하긴 나도 반듯하고 사유가 밝고 어데를 보나 녀자다운 복희가 싫지는 않았다. 그래서 복희가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들고 신문사 옥상까지 따라와서 나한테 건네주면 기꺼이 받아마셨고 가끔 녀성숙사에 전등이 고장났어요. 명주씨, 좀 건너와서 새 전등으로 갈아줄래요? 하고 나를 부르면 역시 싫은 내색없이 녀성숙사로 달려가서 전등을 갈아주군 했었다. 그러면서도 복희 역시 지력상수만은 나의 발뒤축도 따라오지 못할거라며 은근히 깔보았다. 장기 같은 오락이야 내가 배우지 않아 그렇지 마음 먹고 배우면 복희쯤은 상대도 되지 않을것이다. 그럼, 어림도 없는 일이지. 라고 속으로 되뇌이며 으쓱해했다.

우리사이는 조금 더 진척되여 저녁식사후면 같이 신문사에서 거리가 멀지 않은 송화강변의 쓰딸린공원에 가서 산책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그날도 우리는 저녁식사가 끝나기 바쁘게 송화강으로 나가 유보도를 나란히 걸었다.

-명주씨, 제가 어느 잡지에서 보았는데요. 녀자들은 얼마든지 자기 남자를 백만장자로 만들수 있다고 하더구만요.

-물론 그럴수도 있겠지. 그 남자가 억만장자라면 말이야.

나는 복희의 말에 삐딱하게 맞받아쳤다. 그랬더니 복희는 억이 막히는지 입을 벌린채 한참이나 나만 쳐다보았다.

또 어느날, 복희가 뜬금없이 손가락 두개를 내앞에 펴보였다.

-이게 몇갠가요?

-세개!

-똑바로 봐요. 몇개죠?

-보고 또 봐도 세개가 틀림없어.

-왜 이러세요. 명주씬 수학공부를 체육선생이나 일어선생한테서 배웠는가요?
당장 병원 가서 머리부터 진단받아야 할것 같네요.

-멀쩡한 내가 병원은 왜?

-아니, 제가 손가락을 두개 폈는데 어찌 세개로 보여요?

-이것 참, 사람을 놀리는덴 선수네. 복희가 편 손가락이란 말을 하지 않았잖
아. 난 굽힌 손가락을 보고 말했단 말이야.

이렇게 번연히 아는 주정을 하는 내앞에서 복희는 울지도 웃지도 못해 발을 동동 구르지 않으면 도리머리를 떨었다. 나는 그것이 더 재미 있었다.

나는 시간이 갈수록 신문사 뉴스부에서 말썽꾸러기로 소문이 났다. 당시 나는 대학 다닐 때 밤에 공부하고 낮에는 잠을 자던 “밤고양이”습관이 고질로 굳어져 모두들 일손을 다그치며 긴장하게 보내는 사무실에서 쩍하면 머리를 상에 틀어박고 낮잠을 자군 했다. 어떤 때는 드렁드렁 코까지 골았다. 그래서 부장이 찾아와서 “이 사람 정신 있나?” 하며 나를 흔들어 깨우고 눈을 흘긴적도 여러번 있었다. 하다보니 다른 사람들은 서로 뒤질세라 원고편집, 취재, 중점원고 임무를 넘쳐 완수하여 달마다 원고료를 월급보다 더 많이 타는데 멀쩡한 나만은 늘 임무미달이여서 원고료는 고사하고 월급마저도 이래저래 뜯기우군 했다.

-명주씨, 제발 좀 정신을 차리세요.

복희는 안타까와 나를 빠금히 쳐다보았다. 허지만 나는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그 누구의 말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선택은 자유가 아닌가? 이 신문사가 아니면 어데 가서 직업을 못 찾을가봐? 나는 코웃음을 쳤다. 그러던차 나는 목단강시 해림현으로 취재를 다녀왔는데 재수가 없을라니 뒤로 자빠져도 코등을 깬다고 해림현에서 글쎄 나를 고발하는 편지가 련이어 세통이나 신문사 총편사무실로 날아올줄이야.

그 고발편지 내용인즉 박명주라는 젊은 기자가 “당신들과 대화가 안된다”며 시골사람들을 깔보았다는둥, “이렇게 밖에 생각 못하니 잘살긴 열두번도 글렀다”며 오만하고 건방진 소리만 줴치고 다닌다는둥… 하여튼 나를 들쑤신 험담들이였다. 게다가 세통의 고발편지는 모두 끝부분에 “이런 기자는 반갑지 않으니 제발 해림현에 다시 보내지 말아주세요.”라는 차디찬 몇마디까지 덧붙여있었다.

련이어 날아온 세통의 편지는 벌둥지를 쑤셔놓은듯 신문사를 발칵 뒤집어놓았고 지도부 어른들까지 대노하게 만들었다.

어느 주말 오후, 나는 신문사 전체 편집기자대회에서 호된 비평을 받았다. 화
가 날대로 난 신문사 일인자 도영식사장은 “그따위로 일하려면 당장 신문사를 그만둬도 돼!” 하고 상을 치며 호통을 쳤다.

나는 이튿날부터 앓아누웠다. 련 삼일이나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못했다.

그래도 복희가 곁을 지켜주어 다행이였다. 그때부터 나는 복희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였다. 볼수록 예뻤다.

-난 신문사를 떠나야겠어.

-안돼요!

-왜?

-떠날 때 떠나더라도 지금은 아니예요. 정 떠나고싶으면 엎어졌던 자리에서 허리를 쭉 펴고 꿋꿋이 다시 일어선 다음에 떠나세요. 그래야 박명주답지요.
안 그런가요?

복희가 나의 손을 꼭 잡으며 말하였다.

-음, 알았어!

-전 믿어요. 명주씬 꼭 해낼거예요.

-그런데 말이야, 부장이고 사장이고 나만 만나면 한다는 소리가 “자넨 자세부터 바로해야겠어.”라고 하는데 나라는 놈은 태여날 때부터 이렇게 생겨먹었는데 이제 와서 무슨 자세를 어떻게 바로한단 말이야?

-그건 복잡하게 생각할 일이 아닌것 같아요. 명주씬 지금 큰 병이 아니라 작은 감기에 걸렸다고 생각하세요. 그저 눈높이만 살짝 낮추어 주변사람들을 볼 때 눈을 내리깔지 말고 수평으로 보거나 쳐다보는 습관을 하세요. 그러면 자세가 자연스럽게 바뀌여질거예요.

하긴 부장들도 지도부의 어른들도 나를 보는 사람마다 이런 뜻으로 말했겠지만 유독 복희의 입에서 나오는 말만이 내 가슴에 와닿는게 이상했다. 그래서 음- 알았어! 하고 힘있게 머리를 끄덕였다.

그때로부터 석달이 지나자 나는 다달이 월급외에도 원고료가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고 일년이 지난 뒤에는 전 신문사에서 원고료를 가장 많이 타는 기자로 되였다. 게다가 복이 쌍으로 굴러들어 내가 쓴 “고운 술, 미운 술”이란 술평과 “희망의 종소리 울린다”는 통신기사는 당해 성신문출판계통 평론부분 일등상과 통신부분 일등상을 수상하였다. 그래서 전에 호되게 비판을 받았던 바로 그 회의실에서 나는 신문사 전체 기자, 편집들의 축하를 받으며 무대우에 올라가 도사장이 수여하는 상금과 상장을 받아안는 영광을 누렸다.

-박명주기자, 축하하네.

도사장은 힘있게 내 손을 잡아주었다.

-젊은 사람들은 착오를 범해도 돼. 박명주기자처럼 착오를 뉘우치고 깨달으면 훌륭한 사람으로 될수 있다네.

그날 도사장은 회의실이 쩌렁쩌렁 울리게 팔을 내저으며 이런 말을 했다.

그날 밤, 나와 복희는 송화강공원에 나가 수양버들아래에 놓여있는 벤취에 나란히 앉았다.

-축하해요, 명주씨!

-고마와. 복희, 이게 다 복희 덕이야.

-명주씨, 일년전 해림에서 보내온 고발편지가 기억나요?

-기억나구말구.

-지금도 그 편지가 괘씸하게 생각돼요?

-아니야. 한때는 내 가슴에 비수를 꽂았던 그 세통의 편지가 정말 이가 부득부득 갈리도록 미웠지만 지금은 아니야.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 편지들이야말로 내라는 이 못난 인간을 정신 차리게 만들었어. 그 고발편지를 어떤분들이 보냈는지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무릎을 꿇고 절이라도 꾸벅꾸벅 하고싶어.

-진담인가요?

-그렇다니까.

-그럼 절은 그만두고 대신 키스해주면 안돼요?

-무슨 소리지?

어리둥절해하는 나를 보고 복희가 깔깔 웃었다.

-명주씨, 저의 볼에 세번 키스를 해줘요.

-?…

-그 세통의 편지는 몽땅 제가 쓴거예요.

-뭐라구?!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래요. 명주씨가 해림에 취재를 다녀와서 당지 농민들에게 “당신들과는 대화가 안된다”느니 “그렇게 밖에 생각 못하니 잘살기는 열두번도 글렀다”느니 하고 허튼소리를 했다기에 큰마음 먹고 그런 고발편지를 쓰기로 결심했던거예요.

나는 돌부처처럼 멍해졌다.

-제가 언젠가 이런 말을 한적 있죠.

-무슨 말?

-녀자들은 얼마든지 자기 남자를 백만장자로 만들수 있다고요.

나는 너무도 뜻밖이여서 입만 벌린채 할 말을 잃었다.

문득 내가 만약 장기를 배운다 해도 이 녀자한텐 꼼짝 못하고 두손, 두발 다 들고말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으로 복희란 녀자가 거룩하고 존경스러워보였다. 맞아, 이 녀자야말로 진짜 내 배필인거야! 갑자기 가슴이 불처럼 뜨거워났다. 나는 두팔을 벌려 복희를 가슴에 힘껏 끌어안았다.



7


우리는 “5.1절”련휴를 리용하여 길림성 매하구에 사는 복희네 집에 가서 복희 부모님들께 인사를 드렸다. 그리고 국경절에는 또 목단강에서도 뻐스를 두번 갈아타야 하는 림구현 산골에 있는 우리 집에 가서 며칠간 즐겁게 놀았다. 량가 부모님들은 며느리감이든 사위감이든 모두 마음에 들어 싱글벙글이였다. 도시에 사는 복희 어머니는 시골로 내려가서 토종암탉을 사다가 나에게 고아주었고 우리 아버지는 산너머 한족마을에 가서 송아지 한마리를 끌어다가 엎어놓고 온 동네가 들썩하도록 잔치를 벌렸다. 량가 부모님들이 흡족해하니 우리 두 사람은 세상을 다 가진것처럼 가슴이 벅찼다.

그런데 벙어리 랭가슴 앓듯 드러내놓고 말할수 없는 딱 한가지 일만은 내 마음을 몹시 괴롭혔다. 그것인즉 복희가 나한테 몸을 주려 하지 않는것이였다.
나를 믿지 못해 그러는걸가? 아니면 너무 봉건통이여서? 좌우간 다른건 뭐나 다되여도 남녀간에 살을 섞는 일만은 바늘로 찔러도 피가 안 날 정도로 완강하게 거부하였다. 이거라구야 펄펄 끓는 사나이 가슴에 찬물을 퍼부어도 분수가 있지. 복희, 너무하는거 아니야? 너무해도 방법이 없어요. 그 일만은 절대 안돼요. 복희는 이렇게 내 가슴에 대못을 쾅쾅 박았다.

나는 신문사에 입사해서부터 줄곧 독신숙사에서 살았지만 복희는 언제부턴가 신문사에서 그리 멀지 않은 아빠트단지에 단간방 하나를 세 맡아 혼자 지내고있었다. 그래서 휴일날이면 나는 거의 복희네 집에 가군 하였다. 둘만의 아늑한 공간은 이성의 유혹을 불러일으키기에 족했다. 하지만 복희가 어찌나 “봉건통”인지 도무지 “남자구실”을 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나는 복희의 몸을 가질수 없어 안달이 나서 미칠것만 같았다. 세상에 이렇게 지독한 녀자가 또 있을가? 이 녀자는 서른이 다돼도 보나마나 깨끗한 처녀의 몸 그대로일거야. 내가 늑대처럼 자기한테 마구 덮칠가봐 바지의 허리띠를 꽁꽁 조여맬 때마다, 같이 저녁을 먹고 시간이 좀 흐른것 같으면 이젠 늦었으니 어서 숙소로 돌아가라며 나의 등을 떠밀 때마다 나는 야속한 생각이 들군 했다. 그럴수록 복희의 몸이 점점 더 신비하고 점점 더 탐나는 나였다.

그날도 휴일이라 우리는 서점이요, 백화상점이요 하며 하루종일 밖에서 돌다가 저녁에 복희네 집에 돌아와 콩나물과 고사리, 계란, 고추장을 넣고 비빔밥을 만들어 땀을 흘리며 먹었다. 설겆이를 마치고나서 우리는 나란히 앉아 텔레비죤을 틀어놓고 뉴스프로를 시청하였다. 복희는 장기프로를 즐겨보고 나는 동물세계 아니면 스포츠프로를 즐겨보았기에 우리는 언제나 뉴스만 같이 보았다. 그런데 저도 모르게 어느새 나의 팔이 복희의 어깨를 감싸안고있었다.

-복희, 어디선가 이런 재미나는 일이 있었대.

나는 손가락으로 복희의 귀방울을 살짝 만졌다. 언제나 그 정도는 허락하는 복희였다.

-어느 녀성목욕탕에 갑자기 불이 났어. 그래서 숱한 녀자들이 몸에 실 한오리 걸치지 못한채 허둥지둥 밖으로 뛰여나간거야, 살겠다고. 시퍼런 대낮에 알몸뚱이의 녀자들이 우르르 쓸어나오니 지나가던 사람들이 구경거리가 났다고 새까맣게 모여들었어. 이때 녀자들속에서 누군가 “빨리, 빨리 몸을 가리워!” 하고 소리를 질렀어. 그제야 밖으로 나온 녀자들이 정신이 펄쩍 들어 서로 몸을 가리우려고 허둥거렸어. 헌데 가리워야 할 부위는 가슴에 두곳, 가운데 한곳, 세곳이나 되는데 가리울만한 물건이라곤 두손밖에 없었어. 하여 녀자들은 어디부터 가리워야 할지 몰라 어쩔바를 몰라했어. 이런 경우에 맞닥뜨리면 복희는 어느 부위를 먼저 가리우겠어?

-저요? 호호, 두손으로 얼굴을 가리워야죠. 몸만 봐선 누구인지 모르니까. 안 그런가요?

-너무 쉬운 수수께끼를 냈나봐.

나는 말은 이렇게 했지만 내심 복희의 투철한 판단력에 감탄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럼 또 하나 낼가? 남자들은 녀자들의 무슨 소릴 제일 듣기 좋아할가?

-그건 남자들의 취미에 따라, 또 사정에 따라 다르겠지요. 흔히 웃음소리를 듣기 좋아하겠지만 만약 시댁의 어느 년세 많은 어른이 사망한 자리라면 땅을 치며 통곡하는 며느리의 울음소리도 그녀의 남편이나 시댁의 남자들에겐 듣기 좋은 소리가 아닐가요?

-아니, 우리 둘처럼 련인들사이에 말이야.

-련인들사이에? 호호, 그건 잘 모르겠는데요.

-남자들은 말이야, 녀성들이 사르르 허리띠를 푸는 소리가 제일 듣기 좋대.

-어머, 미워라. 명주씨, 이젠 밤도 깊었는데 그만 숙소로 돌아가세요.


-안돼. 난 오늘저녁엔 기어코 남자의 사용권을 행사하고야말거야.

-남자의 사용권? 호호호, 누가 허락했는데요.

-이제 곧 내 장모님 되실분이 허락했지.

-저의 어머니요? 언제?

-지난 “5.1절”에 매하구로 갔을 때 복희 어머님이 그랬잖아? 이제부터 우리
복희를 명주군한테 맡긴다고. 아빠트 한채 사면 사용권이 70년 밖에 안되지만 명주군한텐 영원한 사용권을 주겠다면서.

-호호호, 앞부분은 저도 들었는데 뒤부분은 명주씨가 꾸며낸거잖아요.

명주씨, 명주씨한테 꼭 해야 할 말이 있어요.

자기 복희는 정색하고 나를 쳐다보았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복희는 오래전부터 그날 밤을 손꼽아 기다렸던것 같다.

-저는 과거가 있는 녀자예요.

-과거? 허, 서른이 다된 우리 나이에 과거가 전혀 없었다면 그건 좀 문제가 있는게 아닌가?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나의 뇌리에는 “이 녀자도 분명 처녀는 아니구나.”하는
아쉬움이 번개처럼 스쳐지나갔다. 하지만 진작 그쯤은 받아들이기로 마음의 준비가 되여있는 나였다. 지금 세월에 처녀를 찾으려면 소학교에 가서 찾으라는 류행어도 있지 않는가.

-그런데 명주씨, 상상밖으로 저에게 엄중한 과거가 있어도 괜찮은가요?

-그 말은 복희가 다른 남자들과 련애를 많이 해봤다는 소린가?

순간 나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그렇다면 혹시 임신을 한적도 있었다는 소린가? 나는 긴장해서 손에 땀을 쥐고 복희의 다음말만 기다렸다.

-잠간만 기다리세요.

복희는 화장실로 가겠다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윽고 화장실에서 물소리가 났다. 샤와를 하는것 같았다. 조금 지나자 복희는 흰 목욕수건으로 몸을 칭칭 감고 다시 내앞에 나타났다.

-명주씨, 놀라지 마세요.

내앞으로 다가온 그녀는 등을 돌리고 돌아섰다. 그러더니 한손으로 천천히 목욕수건을 걷어올렸다. 희멀쑥한 엉뎅이가 드러났다. 순간 나의 눈은 얼음강판에 자빠진 황소눈이 되였다.

“婊子!(매춘부)”

오른쪽엉덩이에 까만색으로 문신한 한자 두 글자가 선이 굵게 새겨져있었다. 그것도 하필이면 몸을 파는 녀자를 가리키는 “婊子”란 글자가…

-제가 처음 붙은 대학은 항주에 있는 절강대학이였어요.

얼떠름해서 돌부처처럼 멍해있는 나한테 복희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녀의 학급에 주몽이라고 하는 녀학생이 있었는데 복희도 주몽이도 배구를 잘 쳐서 학원의 배구선수로 뽑혔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둘은 같이 다닐 기회가 많아졌고 사이가 가까와지게 되였다. 그런데 알고보니 주몽이네 집은 항주에서 어마어마한 부자가문이였다. 주몽이의 부친은 항주에서 부동산업을 경영하고있었는데 “주보부”라고 하면 항주시내에선 거의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후에 알게 된 일이지만 주몽이가 몰고 다니는 승용차는 가격이 3백만원도 넘었다. 주몽이와 친한 덕분에 복희는 고급차에도 앉아보고 한상에 만원씩 하는 고급음식점에도 여러번 드나들었다. 정말 눈이 뒤집힐 지경이였다.
대학 1학년 두번째 학기가 금방 시작된 어느 일요일이였다. 복희는 주몽이를 따라 별장에 놀러 가게 되였다. 공원 같은 정원에 수영장까지 딸린 별장은 아름다운 서호를 마주하고있었는데 평소 별장에서 일하는 일군만 해도 4명이나 된다고 하였다. 복희는 그 별장에 두번째로 갔다. 복희와 주몽이는 함께 수영도 하고 테니스도 치다가 저녁때가 되자 왕새우튀김에 고래고기볶음을 놓고 즐겁게 포도주를 마셨다. 그런데 이때 주몽이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응, 쑈미냐?… 그럼 우리 별장으로 오렴. 몇이라구? 너까지 셋? 다 데리고 와도 돼! 주몽이가 통화를 끝내기를 기다렸다가 누구 전화인가고 물으니 쑈미란 애는 주몽이의 친구인데 역시 항주에서 잘 나가는 부자집 아들이라면서 그 애가 친구 둘을 데리고 별장으로 온다고 했다. 이윽고 들이닥친 주몽이의 친구들은 세명 모두 코밑에 털이 부수수한 사내녀석들이였다. 한 녀석은 량쪽귀방울에 주렁주렁 귀걸이를 달았고 또 한 녀석은 팔이며 목에 문신을 했는데 얼핏 쳐다만 봐도 가슴이 섬뜩해났다. 복희는 어쩐지 불안하여 학교로 돌아가겠다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헌데 주몽이가 자기 친구들과 포도주를 한잔씩만 마시고 같이 학교로 가자면서 눌러앉혔다. 갑자기 들이닥친 사내녀석들도 급히 가볼데가 있으니 자기들도 한잔씩만 마시겠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쑈미란 애가 가지고 온 네델란드산 술을 내놓았다. 그런데 포도주같이 생긴 그 술을 한잔 받아마시고 복희는 인사불성이 되고말았다.

아침에 눈을 뜨니 복희는 알몸뚱이인채로 침대에 쓰러져있었다. 시트엔 피자욱도 얼룩져있었다. 하신이 아파났다. 대뜸 어제밤에 그 짐승 같은 놈들한테 륜간을 당했음을 직감했다. 복희가 대수 옷을 몸에 걸치고 방에서 뛰여나와보니 주몽이도 몸에 실 한오리 걸치지 않은채 거실 쏘파에 쓰러져있었다.

주몽이도 같은 봉변을 당한것이 분명했다. 복희는 주몽이를 흔들어 깨우고는 먼저 더러워진 몸부터 씻으려고 세면실로 들어갔다. 바로 거기서 복희는 오른쪽엉덩이에 한심한 문신이 새겨져있는것을 발견했다.

복희는 그길로 파출소에 달려가서 경찰에 신고했다. 그리고는 이튿날 바로 학교를 퇴학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저의 부모님들은 지금까지 이 사실을 몰라요. 전 이듬해 다시 시험을 쳐서 여기 흑룡강대학에 붙었어요.

아! 그래서 복희가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을 때마다 이상하게 왼쪽엉덩
이만 드러냈던거구나.

숙소로 돌아와 자리에 누웠지만 나는 전전반측하면서 잠을 이룰수 없었다. 복희는 피해자야, 불쌍한 녀자야. 리해해줘야 해. 나는 이렇게 마음을 다잡다가도 그 짐승 같은 놈들이, 그것도 무리 지어 복희의 몸을 마구 더럽히고 짓밟은것도 모자라 담배를 꼬나물고 징그럽게 웃고 떠들며 복희의 엉덩이에 문신을 새겼을 끔찍한 장면을 생각하니 머리카락이 곤두서고 가슴이 오그라들었다. 그런 복희의 몸을 나는 더는 가지고싶지 않았다. 가지려 하다가도 그 생각만 하면 불덩이처럼 달아올랐던 몸뚱이가 당장 얼음장처럼 차거워질것만 같았다. 나는 결국 복희와 헤여지는쪽을 택했다.

-우리 앞으로 허물없는 친구로 지내면 안될가?

-네, 그렇게 해요.

생각밖으로 복희의 얼굴표정은 너무도 담담했다. 하긴 어쩔수 없는 선택이라 겉으로 태연한체할수도 있겠지만 어찌 보면 복희는 마음속으로 헤여질 가능성에 대해 미리부터 대비하고있은것 같았다.



8


오늘은 월요일이다. 안해는 아침상을 거두기 바쁘게 출근을 한다고 서둘렀다. 안해의 자가용차 마지막 번호가 “1”자여서 월요일은 운행금지였다. 마침 내가 출근하지 않고 집에 있는지라 안해는 내 차를 몰고 가겠노라며 차열쇠를 달라고 했다. 그리고 점심에는 밥과 반찬이 두루 있으니 그저 된장찌개만 가스불에 올려놓고 끓여먹으면 된다고 했다. 내가 그래, 알았어. 하고 머리를 끄덕이니 오늘도 계란으로 얼굴을 문질러요. 알았죠? 하고 당부하고는 핸드빽을 손에 들고 문을 나섰다.

나는 서둘러 신문사 도사장한테 전화를 걸었다. 토요일날 저녁 한국손님을 초대하느라 술을 조금 과하게 마시고 계단을 내려오다가 그만 발을 헛디뎌 아래로 굴러떨어지는 바람에 눈등과 코등을 다쳤으니 한 이틀 출근하지 않고 집에서 업무를 보겠노라고 둘러댔다. 그다음엔 신문사 총편사무실 송주임한테 전화를 걸었다. 다른 일이 있어 신문사에 못 나가니 송주임이 보고난 마지막 교열원고를 내 메일로 보내달라고 했다. 우리 신문사에서는 편집들의 손에서 원고가 끝나면 각 부서 부장들이 첫 교열을 하고 그다음 교정원들의 손을 거쳐 총편사무실 주임이 재교열을 한 다음 또다시 교정실에 넘어갔다가 마지막으로 부사장 겸 부총편집인 내가 최종교열을 하였다. 축구로 말하면 나는 선수들을 진두지휘하는 총감독이나 다름없었다.

이윽고 컴퓨터를 켜니 지난 주말에 벌써 총편사무실 주임의 교열을 거친 2개 면 원고가 들어와있었다. 오늘은 일간신문 8면과 청도신문 8면이 있었다.
청도신문은 본사 청도지사에서 펴내는 신문인데 지면교열은 본사에서 맡아했다. 내가 막 보내온 원고를 보려고 서두르는데 갑자기 핸드폰이 울렸다.

-형, 허허 이거 참 미안해서 어쩌지?…

뜻밖에 자웅이였다.

분해서 펄펄 뛰며 내 얼굴에 주먹을 날리던 자웅이가 이렇게 빨리 전화를 걸어올줄은 나는 몰랐다.

-형, 어제 윤대무의 결혼식장에서 형수님을 만났었는데 형의 얼굴이 말이 아니라고 하더구만. 그런데 그건 이 동생이 한짓이 아니고 술이란 도깨비가 한짓이라니깐. 이 동생을 용서해주면 안되겠소?

-임마, 용서고뭐고 할것 없어.

-두손을 싹싹 비비며 빌어도?

-그게 아니라 솔직히 말해서 난 진작부터 복희한테 한번 실컷 얻어맞고싶었
어. 그래야 내 마음이 편안할것 같아서 말이야. 그런데 그 매를 네가 대신 때려주었잖아. 그러니 공연히 술에다 핑게를 댈 필요 없어. 때려도 잘 때린거고 맞아도 아픈줄 모르는 매였어.

-정말 그렇게 생각하오? 형이 그렇게 말하니 내 가슴이 뻥 뚫리는것 같고 삼년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가는것 같소.

-됐다. 덩치 큰 녀석이 호들갑을 떨기는?… 그런데 그날 저녁 네가 한 말이 대체 무슨 뜻이냐?

-내가 형한테 무슨 말을 했던가?

-내 입에서 복희의 비밀이 나왔다던 말 말이야. 네가 말하는 그 비밀이 무엇인지 나도 잘 안다. 보아하니 네놈도 이미 알고있는것 같구나… 그런데 이 박명주가 인격을 걸고 맹세한다만 나는 절대 복희의 엉뎅이라는 “엉”자도 내뱉은적이 없다. 알겠니? 혹시 우리 집사람이 너한테 무슨 말을 한거 아니냐? 왜 대답이 없냐?

자웅이가 잠간 망설이는듯했다.

-맞소. 형수님이…

-그래 너 형수가 뭐라더냐?

-지난 주말 서른살 범띠 동갑들이 파티를 할 때 형수님이 이상한 말을 하길래 난 무조건 형의 입을 통해 나온것이라고 생각했던거요.

-그러니까 무슨 말을 하더냐고 묻는거 아니야?

-나하고 복희누나의 결혼술을 언제 먹을수 있냐고 묻길래 관계는 그냥 유지하고있지만 아직 결혼얘기까지 나눌 처지는 못된다고 했소. 그랬더니 형수님이 두 사람이 앞으로 결혼을 하면 박수를 쳐주고 갈라지면 춤을 추겠다고 하더구만.

-허, 그러더냐? 그리고 또?

-그러면서 나의 귀전에 대고 가만히 하는 말이 복희란 녀잔 과거가 있는 녀자래요. 이러더구만. 내가 모르는척 과거라니 무슨 과거? 하고 반문했더니 그 녀자한텐 진기자가 알면 놀라서 까무러칠만한 무서운 과거가 있어요. 진기자 알기나 해요? 이러지 않겠소? 형, 내 말 듣고있소?

이번엔 자웅이가 나의 응답을 기다리고있었다.

-응, 알았어. 오늘은 이만하자.

-양, 내 이제 형 보러 갈게.

-이렇게 전화하면 됐어. 번거롭게 오긴 뭘 와?

내가 먼저 전화를 끊었다.

자웅이의 전화를 받고나니 머리가 무거워났다.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해빛이 스며드는 창가에 다가가서 먼 창밖을 내다보았다.



9


그렇게 복희와 헤여진 뒤 얼마후, 당시 총편사무실 주임이였던 나는 신문사지도부 후비간부양성대상이 되여 섬서성 연안에 있는 중앙당교분교로 두달간 학습을 가게 되였다. 그러던 어느 하루, 자웅이가 멀리 연안에 있는 나한테 전화를 걸어왔다.

-형, 형이 지금 큰 죄를 짓고있다는걸 알기나 하오?

오랜만에 서로 목소리를 듣는데 잘 지내고있느냐는 인사말 한마디 없이 첫마디부터 “큰 죄”를 지었다고 몰아붙이니 나는 단통 기분이 잡쳤다.

-임마, 넌 왜 그렇게 버릇 없냐?

-버릇 같은건 후에 가르치고 내가 묻는 말에나 대답해주오.

-뭔데?

-형이 복희누나와 갈라지자고 했지? 그렇지?

-응, 그래. 그런데 그게 네 눈에 그렇게 큰 죄로 돼보이냐?

-큰 죄지. 형하고 갈라지는 바람에 복희누난 신문사를 떠났단 말이요.

-떠나다니? 어디로?

나는 갑자기 목소리가 격해졌다. 내가 은근히 걱정하던 일이 끝내 현실로 되고말았던것이다.

당시 나는 내가 만약 복희와 헤여지면 그녀가 신문사를 떠나지 않을가 하는 우려를 많이 했었다. 나는 복희가 그러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복희는 사물을 관찰하는 눈이 남달리 예리했고 하루에 1500자 안팎의 기사를 서너편도 어렵잖게 써낼 정도로 글을 빨리 쓰고 재치가 있어 신문사 직원들은 늙은이고
젊은이고 할것없이 복희한텐 기자직업이 천직인것 같다고들 했다.

나도 여러번이나 기자란 “옷”이 어쩜 복희의 몸을 깐깐히 재서 만든것처럼 신통히 어울린다고 했다. 그래서 난 헤여질 때 그녀의 손을 잡고 우리 비록 남과 남이 되더라도 신문사 동료로는 변함없이 함께 지내는거야. 라고 했다. 복희는 호호호 하고 웃더니 아니, 명주씬 저의 앞으로의 인생까지 상관할 참인가요? 라며 그 말은 받아주지 않았다. 나는 더 할 말이 없었다. 그저 속으로 제발 그런 일이 없기만 바랐을뿐이였다. 헌데 결국 신문사를 떠나다니?

-그래 어디로 가느냐고 묻지 않았니?

-그걸 알면 형이 복희누날 다시 신문사로 데려올수 있소?

나는 그 물음엔 감히 대답할수가 없었다. 내가 먼저 헤여지자고 선을 그었고 그래서 이제는 남과 남으로 되여버린 마당에, 또 복희는 복희대로 그사이 정이 들대로 들었던 남자와 이제는 더는 얼굴을 마주치려고 하지 않는 마당에 내가 어떻게 다시 데려온단 말인가?

-복희누난 도리구조선족유치원으로 갔소.

-뭐야? 유치원?…

난 처음엔 잘못 들었나싶었다.

-거기 가서 뭘 한다니?

-원장직을 맡는다오.

-허허, 유치원 원장…

나는 할 말이 없어 실없이 웃었다.

아니, 하다못해 중학교라도 갈거지 하필 코 빠는 애들을 키우는 유치원으로 가다니? 그런 애들의 원장? 나는 생각할수록 어처구니가 없었다. 나는 자웅이의 말대로 복희의 앞길을 망쳐놓은게 아닌가 하는 죄책감이 갈마들었다. 그래서 복희와 관계를 다시 회복할가 하는 생각도 가져보았다. 정말 그 일만 아니라면 어데도 나무릴데 없는 녀자였으니까.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아도 그 일은 나한테 너무나 큰 충격이였다. 그녀의 엉뎅이에 새겨진 수치스런 문신 그리고 그날 밤 짐승 같은 망나니들이 그녀의 몸을 마구 짓뭉개놓았을 한심한 장면을 머리속에 떠올리기만 해도 숨이 컥컥 막히고 눈앞이 아찔해났다.

안돼! 백번 다시 생각해봐도 안되는건 안되는거야. 장부일언 중천금이 아니더냐. 이미 헤여지자고 내 입으로 내뱉은 이상 그대로 밀고나가는거야. 나는 재차 헤여지는쪽을 택했다. 그러고나니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나이 서른이 되는 녀성이 마음을 어떻게 먹든지, 직업을 어떤걸로 바꾸든지 그건 어디까지나 본인이 알아서 할 일이지 다른 사람이 싱겁게 감 놔라, 배 놔라 할 일이 아니였다. 나는 이렇게 스스로를 달랬다.

그런데 자웅이는 달랐다. 자웅이는 짬만 있으면 복희한테로 달려갔다. 물론 장기를 두러 간다는 핑게를 댔지만 내가 보기엔 신문사를 포기하고 유치원을 택한 복희의 일이 너무 안타까와 동정해주고 진짜 동생이 되여주고싶어 자주 발길을 옮기는것 같았다.

-형, 어제 도리구조선족유치원에서 운동대회를 했는데 개막식이 정말 볼만했소. 어떤 반에선 통일로 나비처럼 날개 달린 옷을 입고 나왔고 어떤 반에선 닭, 돼지, 코끼리와 같은 갖가지 동물모양을 하고 등장했소. 또 한 학급에선 어쨌는지 아오? 아이들마다 졸, 말, 차, 포 등 동그란 장기쪽을 만들어 앞가슴에 달고 나왔지 뭐요. 하도 신기해서 내가 인제 겨우 스무살쯤 되여보이는 담임교원한테 이 아이디어를 혹시 함원장이 내놓은것이 아닌가고 물었더니 예, 맞아요. 하고 대답하더라니까. 복희누난 유치원 원장으로 간지 이제 겨우 반년 밖에 안되는데 유치원선생님들과 학부모들한테 위신이 대단하오. 이건 내가 직접 보지는 못했고 귀동냥으로 들은 얘긴데 며칠전 어느날 저녁에 아이와 부모가 함께 무대에 올라 장기자랑을 하는 이벤트가 있었다오. 그런데 한창 이벤트가 진행되는 도중에 갑자기 정전이 되여 장내가 까막나라가 되였다오.
이때 복희누나가 학부모님 여러분, 절대 놀라지 마시고 먼저 아이부터 품에 꼭 껴안으세요. 그다음 몸에 소지한 휴대폰을 꺼내 플래시를 켜세요. 라고 소리쳤다오. 누나의 말을 듣고 모두들 휴대폰의 플래시를 켰는데 장내는 인차 서로의 얼굴을 가려볼수 있을 정도로 밝아졌다오. 복희누난 또 목소리를 높여 유치원선생님들더러 먼저 밖에 나가 앞마당에 세워놓은 자가용차의 헤드라이트를 켜라고 분부하고는 부모님들이 아이를 안고 한 사람 한 사람 밖으로 나가게 했다오. 참, 언제 봐도 우리 누난 장기에서 궁을 잘 지키는것처럼 무슨 일에서나 침착하고 빈틈이 없다니까.

그러던 어느날 저녁이였다. 퇴근을 하려고 내가 사무실을 나서는데 문앞에서 서성거리며 기다리고있던 자웅이가 다짜고짜 나의 팔을 잡아끌었다. 나와 술 한잔 하고싶다면서. 그래서 난 안해한테 전화를 걸어 늦어질것 같다고 알리고는 자웅이가 이끄는대로 신문사근처에 있는 조선족음식점으로 들어갔다.

-형, 형은 어째서 복희누나와 그만두었소?

자웅이는 술 한잔 굽을 내더니 이런 질문을 들이댔다.

-임마, 새삼스럽게 왜 또 그 말이냐?

-궁금해서 그러오. 형, 복희누나한테 도대체 어떤 허물이 있소?

-너무 반듯하고 총명한게 허물이지. 그외엔 나도 잘 몰라.

-그런데 왜 갈라졌소?

-임마, 좋은 사람들이라고 다 부부가 되냐? 감정이 맞지 않으면 갈라질수도 있는거지.

-혹시 누나한테 무슨 병이라도 있는거 아니요?

-아니야, 그런거 없어.

-그럼 혹시 형과 복희누나가 어떤 친척관계가 있어 부부로 맺어질수 없는 말 못할 사정이라도 있는건 아니요?

-어허, 이 녀석 봐라…

-아니면 또 혹시 복희누나가 옛날에 남녀관계가 복잡했던게 아니요? 물론 이건 아닐거라고 생각하오. 남녀가 부부사이로 된다면 과거로 돌아가서 사는것이 아니라 오늘과 래일을 함께 사는거니까. 이런 도리는 형이 나보다 더 잘 알게 아니요.

-임마, 너 지금 소설을 쓰고있냐? 됐어, 그 말은 그만해.

-양, 더 안하겠소. 어딜 봐도 나무랄데 없는 복희누나를 형이 갑자기 싫다고 하는게 너무 이상하고 리해가 가지 않아서 한번 해본 소리요.

-그렇게 좋으면 네가 데리고 살려무나.

-형, 정말이지? 내가 그래도 되는거지? 그렇지 않아도 나는 지금 그러고싶은 생각이 굴뚝같소. 솔직히 말해서 그래서 형한테서 복희누나에 대해 알고싶은
것도 많았던거고…
자웅이는 자기 마음속의 말을 나한테 거침없이 터놓았다. 그는 복희를 사랑하
고있었던것이다.

그 일이 있은 뒤로 자웅이는 내앞에서 복희에 대한 말을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차츰 신문사에는 자웅이와 복희가 련애를 한다는 소문이 났다. 녀석! 너도 어쩜 신통히 내 전철을 밟고있구나. 언젠가 네가 사랑하는 녀자의 엉뎅이에 새겨진 그 문신을 보게 되면 너도 나처럼 등을 돌리게 될거야.

나는 자웅이를 보며 코웃음을 쳤다.
그런데 나의 생각은 빗나갔다. 빗나가도 한참 멀리 빗나가고말았다.



10


어느새 총편사무실에서 보내온 교열원고를 다 보았다. 복희가 글을 빨리 쓴다면 나는 글을 빨리 읽는 사람이였다. 복희가 소설책 한권을 보는 사이에 나는 두권씩 보군 했다. 나는 기지개를 켜며 컴퓨터앞에서 일어났다.

-송주임입니까?

나는 총편사무실 송주임한테 전화를 걸었다.

-교열을 마쳤습니다. 인쇄공장에 넘기십시오. 그런데 우리 신문사 일부
편집들의 중-조번역수준이 몹시 차한것 같습니다. “心里有鬼”를 어떻게 “마음속에 귀신이 있다”고 번역할수 있습니까? “마음속에 꿍꿍이(속셈)가 있다”든지 “마음속에 흉계를 품다”고 번역해야 되는거 아닙니까? 우리 편집대오의 번역수준향상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할것 같습니다.

-그래, 맞는 말이요.

-사회부 부장과 송주임도 교열을 했을텐데 어떻게 이처럼 한심한 글들이 저한테까지 넘어올수 있습니까?

-미안하오, 박사장. 내가 제대로 보지 못했네.

나보다 열네살 이상인 총편사무실 송주임의 목소리는 절절 기여들고있었다.
통화를 마치고 벽에 걸린 시계를 올려다보니 점심 열두시가 되여가고있었다. 대충 점심을 한술 뜨려고 부엌간에 들어가 기웃거리는데 별안간 초인종이 울렸다.

자웅이였다. 녀석은 과일 한구럭 사들고 직접 집에까지 찾아왔던것이다.

-이 녀석 봐라. 아침에 전화통화를 했으면 됐지 여기까지 오기는?…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내심 반가와 나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형, 잠간, 이 얼굴이… 요 새까매진 눈언저리는 신통히 참대곰 같고 이 입은 어쩜 저팔계 주둥이 비슷하네. 야- 이게 다 내가 만든 걸작이란 말이요?
자웅이는 옛날부터 꽤나 능청스러운 녀석이였다. 그래서 자랄 때 마을어른들은 그를 “속에 령감이 들어찬 놈”이라고 했다.

-너 점심 아직 안 먹었지?

-어제밤에 술을 너무 많이 마셔 난 아침도 못 먹고 출근했댔소.

-또 누구하고 술 마셨게?

-혼자 퍼마셨지. 속이 상해서… 그 일은 천천히 말하고 형, 술이 있으면 한잔 주오.

-간밤에 과음했다면서?

-그래도 형 집에 왔는데 한잔 마셔야지.
나는 안해가 아침에 준비해놓고 간 반찬과 “오가백”소주 한병을 내놓았다.

-형, 정말 미안하오. 내 절이라도 꾸벅 할가?

-녀석, 괜찮대두.

내가 자웅이의 잔에 소주를 부어주었더니 녀석은 고개를 젖히며 시원스레 굽을 냈다. 그리고는 아침에 전화에서 형수님이 동갑들의 파티에 가서 복희에 관한 말을 하기에 내가 알려준걸로 잘못 짚었다던 말을 또 꺼냈다.

-그런데 형, 형도 알고있는 일이니 무랍없이 말하는데 복희누난 왜 그 문신을 지워버리지 않았을가? 문신을 지울수 없다면 엉덩이살을 조금 떼여내서 미용하면 되지 않소?

-글쎄다. 그 사람의 속을 내가 어찌 알겠냐만 혹시 이미 그런 문신이 새겨진바 하고는 그 아픔까지 받아줄수 있는 남자를 만나려고 그러는거 아닐가?

-누난 속이 깊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녀자요.

-그런데 넌 복희한테 그런 문신이 있는걸 언제부터 알았냐?

-안지 이젠 반년도 넘었는걸. 내가 누나와 결혼하고싶다고 하니까 먼저 그 문신부터 보여주었소. 그리고 가슴 아픈 이야기도 들려주었고…

-그런 이야기를 듣고도 너는 괜찮은거니?

-괜찮구말구. 그건 누나의 잘못이 아니잖소. 난 정말 누나와 아픔도 함께 나누고싶고 비밀도 같이 공유하며 살고싶소. 형, 내가 누나를 사랑하는 이상 마땅히 그래야 하는거 아니요?

그 말에 나는 할 말이 궁해졌다.

갑자기 나는 자웅이가 다른 사람으로 보였다. 나보다 나이만 어릴뿐이지 진짜 사내답고 흉금이 넓은 녀석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보니 자웅아, 넌 이 형보다 나은 놈이야.

-형, 갑자기 무슨 롱담을 그렇게 하오?

-롱담이 아니야. 복희가 아마 너같이 사내다운 녀석을 만나려고 그 문신을 없애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허허, 그런 말 하지 마오. 내 어제밤 왜 혼자 술을 퍼마셨는지 아오? 다 복희누나때문에 속이 상해 마신거요.

-복희가 왜?

-나는 누나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곱고 뭘 해도 다 마음에 드오. 지어는 꿈을 꿔도 늘 복희누나의 얼굴만 나타나군 하오.

자웅이는 어제밤에도 복희누나를 위해 자기가 한몸 내던지는 꿈을 꾸었노라며 한참 꿈얘기를 늘어놓았다.

-형, 나는 그냥 죽자살자 누나를 따르는데 누난 그렇지 않은가봐. 늘 우린 누나, 동생 사이일뿐이라고 하면서 장춘에 만나는 남자도 있다고 선을 긋소. 엊저녁에도 같이 저녁을 먹다 또 그런 소릴 하기에 기분이 상해서 누나를 집앞까지 바래다주고 혼자 신문사근처에 있는 음식점에 들어가 술을 마셨소.

-내가 보기에 장춘에 만나는 남자가 따로 있다는 소린 새빨간 거짓말인것 같다. 솔직히 기둥처럼 믿었던 나한테서 거절을 당한 가슴 아픈 교훈이 있는데다가 네 나이가 자기보다 세살이나 어리니까 주저심이 들어서 그래. 혹시 너의 마음이 진심이 아니라 겉과 속이 다르거나 또는 물덤벙술덤벙하는게 아닌가 하는 우려심에 아직도 너를 고험하고있는것 같구나.

-형의 말대로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소. 정말 나를 고험하느라 그런다면 난 5년이고 10년이고 얼마든지 기다릴수 있소.

-아마 내 추측이 틀림없을거야. 그러니 실망하지 말고 그냥 힘을 내.

-형이 그렇게 말해주니 정말 힘이 막 솟구치는것 같소. 고맙소, 형!

자웅이는 술잔을 들다말고 내 손을 덥석 잡았다. 얼마나 흡족했던지 녀석의 두눈에선 주르르 두줄기 눈물까지 흘러내리고있었다.



11


나는 복희를 만나고싶었다.

복희를 그리는 마음에 눈물까지 흘리는 자웅이를 보내고나니 갑자기 복희를 만나봐야겠다는 생각에 다른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런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가 복희를 만난다는것은, 그것도 단독으로 만난다는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였다.

어찌해야 복희가 나를 만나줄가?

한참 방안을 서성거리며 궁리를 짜던 나는 스마트폰의 워이신에서 복희란 이름을 찾아보았다. 복희와 갈라진 뒤 우리는 한번도 워이신을 통해 문자를 주고받은적이 없지만 나의 워이신엔 복희의 이름이 아직도 남아있었다. 혹시 복희도 워이신에 내 이름을 그대로 남겨두지 않았을가? 나는 워이신에 무슨 말을 쓸가 생각하다가 스마트폰으로 한심하게 이그러진 내 얼굴모양을 한장 찍어 보냈다.

-박명주입니다. 속히 만나고싶습니다.

나는 사진밑에다 이런 글도 첨부하였다.

그런데 하늘이 도와주었는지 복희에게서 인차 회답이 왔다.

-신문사 박사장? 얼굴은… 웬 일인가요?

-만나서 이야기하고싶습니다.

-네.

복희는 쾌히 승낙했다. 《손자병법》의 삼십륙계엔 “고육계(苦肉计)”라는것이 있다. 혹시 이것도 고육계에 속하는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이그러진 내 얼굴 사진이 용케도 복희한테 먹혀든것 같았다.

나는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택시에 앉아 약속한 다방으로 갔다. 다방이 도리구
조선족유치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지라 복희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있었다. 복희는 내가 들어서는걸 보고 다방아줌마에게 커피 두잔을 부탁했다.

-얼굴이 왜 그래요? 혹시 누구한테 맞으신거 아녜요?

-네, 바로 자웅이의 주먹에 맞은겁니다.

한때는 허물없이 말을 놓았던 녀자였지만 지금은 꼬박꼬박 존칭어를 써야 하는 상대였다.

-자… 웅이? 두분은 한고향 사람이고 친형제처럼 가깝게 지내는 사이가 아닌가요? 그런데 왜요?

-그 녀석이 함원장을 위해서 저를 때린겁니다.

-예?

나는 눈에 걸었던 선글라스를 벗었다.

-어머! 많이 다치셨네요. 그런데 저를 위해서라니요? 그게 무슨 말씀인지?…
복희는 의아하여 두눈이 꿀종지처럼 커졌다. 그래서 나는 자웅이가 안해한테서 “복희는 과거가 있는 녀자”라는 말을 듣고 내가 옮긴줄로 알고 나를 사정없이 때린 사실의 자초지종을 들려주었다.

-자웅이는 나보다 네살이나 어리지만 진짜 사내답고 흉금이 넓은 녀석
입니다. 솔직히 나는 복희씨의 과거가 꺼림직하고 수치스럽게 느껴져 두손 들고 물러섰지만 자웅이 그 녀석은 그런 엄청난 과거마저도 복희씨와 함께 아파하고 복희씨와 함께 공유하려고 마음을 먹은 녀석입니다.

복희는 조용히 내가 하는 말을 듣고만 있었다.

-자웅이는 어제밤, 이런 꿈도 꾸었다고 합니다. 꿈에 어찌하다 복희씨가 그만 한쪽 다리가 부러졌답니다. 그런 복희씨를 등에 업고 자웅이는 정신없이 병원으로 달려갔답니다. 그런데 병원에 들어서니 흰 위생복을 입은 저의 안해가 상한 다리를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 한다며 무작정 복희씨의 바지를 벗기려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자웅이가 저의 안해를 확 밀치며 바지를 벗기면 엉덩이가 드러나지 않냐고 꽥 소리를 질렀답니다. 헌데 이번엔 흰 위생복을 입은 숱한 의사들이 “보구말구. 꼭 봐야 해.” 하며 마구 달려들어 복희씨의 바지를 기어이 벗기려고 하더랍니다. 자웅이는 너무도 급한 나머지 자기 몸으로 복희씨의 몸을 가리우고 두손, 두발을 허둥거리며 “안돼, 절대 안돼!” 하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다 펄쩍 깨여났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저를 찾은겁니까?

-예. 나보다는 확실히 다른 녀석이란걸, 그래서 그 녀석앞에서는 고개를 숙이게 된다는걸 내 입으로 솔직히 말하고싶어 복희씨를 만나자고 했습니다.

-고마와요.

복희는 극력 말을 아꼈다. 하지만 천천히 고개를 들고 얼핏 나를 쳐다보는 그녀의 눈에는 알릴듯말듯 맑은 이슬이 괴여오르고있었다.



12


복희를 보내고나서 나는 바로 택시를 잡아탔다. 내가 택시에서 내려 아빠트골목길로 꺾어드는데 호주머니에 넣은 스마트폰이 요란스레 울어댔다. 안해였다. 저녁에 뭘 먹고싶으냐고 묻는 전화였다. 아무거나 다 좋아. 내가 음식에 별로 신경 안 쓰는 사람인걸 당신도 잘 알잖아? 나는 건성으로 대답했다. 그런데 안해는 전화를 놓으려 하지 않았다. 선생님, 지금 어디세요? 어디긴, 집이지. 내가 둘러댔더니 안해는 천리안이라도 가졌는지 거짓말! 하고 톡 내쏘았다.

바깥 같은데요? 바람에 우수수 나무잎이 흔들리는 소리도 들리는것 같고… 지금 멀리서 어떤 할머니가 누구를 부르느라 고함치는 소리도 은은히 들리네요.

허 참, 귀신이네! 신경학과박사공부까지 하더니 귀신이 울고 갈 지경이였다.
그만큼 신경이 고도로 예민한 녀자였다. 하는수 없어 방금 산책하러 밖으로 나왔다고 하니 그럼 선글라스는 꼈느냐? 마스크는 착용했느냐? 잔사설이 또 오지오지다. 과연 녀성들은 남성들에 비해 섬세하고 구체적인것이 특점이라고 하더니 맞는 말이였다. 그나저나 저 귀신같은 안해가 나와 복희의 련애사를 눈치 챈것도 모자라 어떻게 복희의 그 엄청난 비밀까지 알아냈을가? 나는 새삼스레 그것이 궁금해났다. 혹시 내 일기책을 훔쳐보았을가? 일기책은 줄곧 내 사무실 책상서랍속에 꽁꽁 숨겨져있는데… 안해는 결혼전에 두번인가 나를 따라 신문사로 와보고는 여직껏 신문사대문에 발을 들여놓은적이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나는 집안에 들어서기 바쁘게 곧바로 서재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손에 잡히는대로 책장에 진렬된 책들을 한권씩 꺼내 털어보았다. 언젠가 안해가 어느 책속에 끼여있는 사진 한장을 꺼내들고 이게 무슨 사진이지요? 하고 새초롬해서 나한테 물은적이 있었다. 그것은 어느 여름날, 나와 복희가 수양버들이 우거진 송화강변의 벤취에 나란히 어깨 겯고 앉아있는걸 자웅이가 찍어준 사진이였다. 그때 눈초리가 꼿꼿해서 그 사진과 나를 번갈아보던 안해의 얼굴이 지금도 눈앞에서 알른거리는것만 같다. 그처럼 전혀 생각지도 못한 사진이 책갈피에 끼여있듯이 혹시 어느 책속에서 무슨 단서를 잡힐만한것이 나오지 않을가싶어 나는 책갈피마다 샅샅이 뒤졌다.

혹시 내가 복희의 엉덩이에 새겨진 문신을 보고 너무 큰 충격을 받아 복희, 복희, 복희… 엉뎅이, 엉뎅이, 엉뎅이… 문신, 문신, 문신… 婊子、婊子、 婊子… 라고 아무렇게나 락서를 한 종이장이 어느 책갈피속에 끼여있을는지도 몰라 그 와중에도 내내 가슴이 죄였다.

하지만 나는 인차 포기하였다. 방안 두면을 가득 채운 수천권에 달하는 책을 다 뒤진다는것도 미련한짓이겠지만 설사 어느 책속에 그런 종이장이 끼여있다 하더라도 만약 안해가 먼저 발견하였다면 아직도 그대로 놔둘리 만무하였던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서재에서 나와 침실로 들어갔다. 침실 침대머리와 마주하고있는 서쪽벽에는 안해의 화장대가 놓여있었다. 그곳은 안해 혼자만의 세계였다. 안해는 매일 아침 화장대앞에 있는 북같이 둥근 의자에 앉아 얼굴에 바르고 그리고 찍느라고 분주스러웠다. 나는 의자에 앉아보았다. 결혼해서 처음 해보는 일이였다. 나는 화장대우에 도시의 크고작은 건물처럼 즐비하게 진렬되여있는 화장품들을 멀거니 들여다보았다. 녀자들이 얼굴에 이렇게도 많은걸 바르고 찍는단 말인가?

나는 뭐가 뭔지 몰라 어리둥절해졌다. 화장대밑에는 장방형으로 된 서랍 두개가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왼쪽서랍을 손으로 당기니 안에 쌍둥이처럼 똑같이 생긴 나무함 두개가 들어있었다. 그중의 함 하나를 꺼내 뚜껑을 열어보니 거기에는 목걸이, 귀걸이, 반지 따위들이 올망졸망 들어있었는데 언젠가 내가 대만으로 학술회의를 갔을 때 사다준 홍산호목걸이도 눈에 띄였다. 나는 호기심이 동해 다른 함 뚜껑도 슬며시 열어보았다. 그런데 그 함속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무엇을 넣으려고 이렇게 비워두고있는걸가? 그건 안해의 배속으로 들어가보지 않은 이상 알수 없는 일이였다. 그다음 나는 천천히 오른쪽서랍을 열었다. 이게 뭐야? 나는 흠칫 놀랐다. 그속에는 알락달락한 갓난아기 양말들이 그득 들어있었다. 내가 양말을 하나 들고 손가락으로 길이를 재여보니 식지 두마디쯤밖에 되지 않았다. 얼핏 눈짐작으로 양말이 적어도 서른컬레는 족히 될것 같았다. 그것은 안해의 마음이였다. 결혼할 때 나는 안해를 보고 지금은 각자 사업에 정력을 몰부어야 하니 아이는 몇년후 여유가 생기면 가지자고 했었다. 당시 안해는 녀자들은 나이가 많아질수록 임신하기 힘들다던데요. 하면서도 결국은 내 의사를 따라주었다. 하지만 속마음은 그게 아니였다. 그래서 안해의 입에서 가끔 어느 동창네 아이는 벌써 몇살이라는둥 아무개네는 둘째아이를 임신중이라는둥 하는 소리가 노래처럼 흘러나오기도 했다. 아마 아이가 부러울적마다 안해가 아기양말을 한두컬레씩 사다가 차곡차곡 쌓아둔것 같았다.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요즘 안해의 입에서 아기타령이 없었던것이다. 도리대로 말하면 나도 반년전에 신문사의 부사장으로 승진하고 안해도 이미 의과대학 부속병원의 부교수로 되였으니 지금은 여유가 있다고 할수 있었다. 허지만 안해는 아이에 대한 말을 일언반구도 내비치지 않았다. 왜서일가? 언뜻 불길한 예감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옛날 내가 신문사에 금방 입사했을 때 오만하고 안하무인이 되여 잠간 비뚠 길을 걸었던 이왕지사가 떠올랐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안해에게 무엇인가 크게 잘못하고있는것이 아닌가? 그래, 안해가 나와 복희의 련애사를 캐여물을수록 나는 더욱 숨기려하고 거짓말만 반복해왔다. 아마 안해는 그것이 탐탁치 않아 암암리에 기를 쓰고 뒤를 파고들다보니 복희의 엉뎅이에 있는 문신까지 알아내게 되였는지 모른다.

아울러 남편을 의심하고 믿지 못해 은근히 실망의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매사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녀자로 변하였다. 기실 터놓고보면 별일도 아닌걸 가지고.

그래, 별일 아니야. 그러니 다 털어놓고 안해와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해야 하는거야.

나는 마침내 화해의 탈출구를 찾았다. 생각해보면 안해는 나때문에 복희한테 좋은 감정을 품고있지 않았다. 그러니 자웅이한테 귀띔한것처럼 조만간에 복희의 비밀을 퍼뜨리고 다닐 가능성이 아주 컸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나와 복희, 자웅이가 다 상처를 입게 된다. 나에게는 이미 남남이 된 복희의 불행한 비밀을 지켜줘야 할 도의적책임이 있는가 하면 나를 믿고 나와 같이 한침대에서 자고 한솥의 밥을 먹으며 사는 안해를 지켜줘야 할 현실적책임도 있다.
나는 안해의 화장대앞에 앉아 아기양말을 만지작거리며 오래동안 깊은 생각에 잠겼다…

안해가 퇴근하여 돌아왔다.

늘 그러하듯이 안해가 출입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병원의 소독수냄새가 온 집안에 풍겼다. 안해는 량손에 저녁에 먹을 음식을 담은 일회용밥곽을 올망졸망 들고있었다. 나는 얼른 안해의 손에서 밥곽을 받아 부엌간에 가져다
놓았다. 안해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 눈빛에는 아니, 여직껏 이런 일에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않던 량반이 오늘 웬 일인가요? 해가 서쪽에서 뜨겠네요. 하는 말이 담겨져있었다.

-선생님, 물어볼게 있어요.

세면실에 들어가 손을 씻고 나오던 안해가 나를 보며 생글생글 웃는다.

-선생님은 그런 얼굴로 밖에 나가 산책하실분이 아니잖아요. 오늘 어디 다른델 다녀오신거 맞죠?

-그래, 어델 좀 다녀왔어.

-어델요? 혹시 진기자를 만나보러?

-아니.

-그럼요?

-나 오후에 함복희원장을 만나보고 왔어.
나는 함복희란 이름을 정확히 발음하려고 일부러 악센트를 넣어 또박또박 말하였다…

 


 
 

 
Total 7
번호 제   목 글쓴이 날짜 조회
7 연변문학 2017년 2호 추천작품-서진평(김동규) 작가협회 03-16 2718
6 연변문학 2017년 2호 추천작품-물어볼게 있어요(박일) 작가협회 03-16 4949
5 연변문학 2017년 2호 추천작품-누가 고양이를 죽였나?(장선자) 작가협회 03-16 5018
4 연변문학 2017년 1호 추천작품-동주의 남자(김혁) 작가협회 02-23 2795
3 연변문학 2017년 1호 추천작품-걸어다니는 나무(조은경) 작가협회 02-23 2694
2 "화림문학상"수상작품-바람의 뜰(박은희) 작가협회 01-25 2934
1 “화림문학상"수상작품-복숭아씨 (박련숙 ) 작가협회 01-25 3138
 
 
and or

Copyright © 2009 延邊作家協會 all rights reserved

地址: 吉林省延吉市公園路000號 郵編: 133000 吉ICP備1200596號
Tel: 0433-200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