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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조선족작가넷 > 문화카페 > 수상작품 > “화림문학상"수상작품- 소설 복숭아씨 (박련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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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1-25 16:45
“화림문학상"수상작품- 소설 복숭아씨 (박련숙)
 글쓴이 : 작가협회
조회 : 2,998  



                                   복숭아씨


                                                            박련숙



귀뚜라미의 청량한 울음소리가 귀청을 간질이고 목 언저리를 스치는 소슬한 바람이 달

빛을 스치는 어느 날이었다. 희끄무레한 달빛 아래 가로등마저 끄덕끄덕 조는 듯 인행도

로가 뉘 집 발바리가 싸놓은 똥 무지를 가려볼 수 없게 어릿어릿하였다. 열애에 빠진 한

쌍의 커플이 돌계단에 찰싹 붙어 앉아 소곤소곤 속삭이느라 여념이 없었다. 여느 때처럼

야근을 마치고 나른한 다리를 다독이며 귀가하는 걸음이었다. 옷깃으로 마구 헤집고 들

어오는 바람에 어깨를 잔뜩 옹송그리고 괜스레 면구스러워지는 마음으로 까치발을 하고

돌계단을 돌아 아파트 입구로 막 굽어드는데 야옹 하고 고양이 한 마리가 언뜻 스쳤다.

가슴이 덜컥하며 외마디소리가 절로 새어나왔다. 희끄무레한 불빛에 비친 고양이 눈이

섬뜩하게 맞혀오며 으스스 한기가 온몸을 훑어 내렸다. 영물이라고 하는 고양이의 내밀

한 허를 꿰뚫어보는 것 같은 천연덕스러운 눈빛에 소스라치며 둬 발짝 물러섰다……


여인이 성큼성큼 걸어온다. 


가을바람에 멋대로 날린 낙엽을 서걱서걱 밟으며 한 팔에 보따리를 꿰차고 다른 한 팔에

는 말총머리의 열 둬 살 됨직한 계집애를 이끌고 큰 보폭으로 마당에 들어선다. 나팔꽃

무늬가 새겨진 널따란 차양 모자가 여인의 얼굴을 반쯤 가리었고 집문 쪽을 흘끔거리며

향하는 발걸음이 유난히 분주하다. 어미 팔에 매달린 아기원숭이 같은 계집애가 여인의

보폭을 맞추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다. 계집애의 검고 깊은 쌍꺼풀과 눈빛은 신통히 여인

을 닮아 있다. 


이웃집 아들딸의 헌걸찬 빗질에 마당은 온통 뽀얀 먼지가 춤추듯 흩날리는 속에 석양이

동네에서 유난히 우람진 자두나무 그늘을 길게 늘어뜨리고 있을 때다. 나뭇가지에 조롱

조롱 매달려있는 울긋불긋한 자두가 하늬바람에 멋진 점프를 하며 툭툭 떨어지는 소리

가 귀를 간질이고 목젖을 울리는 계절이었다. 


나는 울바자너머로 이웃집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새총을 만지작거리며 훔쳐보았다. 온

신경줄은 나이가 나와 어슷비슷해 보이는 계집애에게 로 향해 있었다. 이웃집 텃밭에 몰

래 기어들어 여기저기 널려있는 자두를 주어먹거나 어른 주먹만 한 노란 토마토를 따먹

으려면 아무래도 계집애의 까만 눈을 피해갈 수 없을 것 같은 예감이 뇌리를 감돌았다.

내일 모레면 환갑이 되는 이웃집주인 마 지서(马支书)가 새 마누라를 맞게 된 것은 이미

온 동네 아낙들의 구설수에 올라 있었다. 


"낫살을 먹어갖고 노망을 해도 유분수지. 그 나이에 무슨 낙을 볼라꼬 장가를 간대유~

내일모레면 큰딸 시집보내고 아들 장가 들여야 할 텐데 말이유, 색시가 글쎄 10살이나

어리다지 뭐유? 이게 웬 해괴한 일이라우." 


동네 아낙들의 화투판에서 이런 말들이 오갔다. 


마 지서네 굴뚝에서 아낙들의 입심을 꺾을 기세로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어린 의붓딸의 환심을 사고 싶었던지 새장가 들기 며칠 전부터 마 지서는 도끼를 휘두르

며 헌걸차게 목수 일을 하더니 마당 한 귀퉁이에 그네 하나가 만들어졌다. 마 지서가 공

정을 하는 내내 나는 마치 나를 위해 즐거운 놀이터를 만들어주기라도 하는 듯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주위를 맴맴 돌아쳤다. 마 지서가 개구쟁이 적부터 심어져 있었다는

소나무는 굵은 가지가 동아줄을 매달기 안성맞춤하게 옆으로 뻗어 있었다. 가로로 뻗은

굵은 가지에 동아줄이 동동 매달리고 엉덩이가 들어앉기 맞춤하게 발판이 만들어졌다. 


"이 짜식아! 한번 앉아보거래~" 


마 지서의 허락이 떨어지기 무섭게 나는 냉큼 그네에 올라앉아 몸을 앞뒤로 마구 흔들어

댔다.


계집애가 그네에 앉아 국수사발을 들고 고양이처럼 냠냠 입을 다시고 있었다. 고양이 한

마리가 그네 주위를 어슬렁대며 기분 나쁘게 야옹야옹 목청을 가다듬고 있었다. 계집애

가 온 뒤로 마 지서네는 하루 세끼 이밥을 먹는 동네 여느 집하고는 먹는 게 색달랐다.

계집애의 엄마 마연댁("马延"이라는 고장에서 왔다고 다들 그렇게 불렀다.)은 밀방망이

로 밀가루반죽을 얇게 밀어 오이채 썰 듯 가늘고 일매지게 국수를 만들었다. 밀가루가

꽃가루처럼 흩날리고 길고 가는 국수가 설설 끓는 가마 속에서 물물 삶겨졌다. 마연댁에

게서 송송 썬 파에 계란까지 넣은 칼국수를 처음 얻어먹은 뒤로 그 쫄깃쫄깃하고 부드러

운 식감의 감미에 홀딱 반해 저녁때면 이웃집 마당에서 서성댔다. 번마다 먹을 복이 차

례진 건 아니었으나 어쩌다 한번 얻어먹은, 엄마의 익숙한 맛과는 별개의 색다른 맛의

여운이 마음 한 자락을 못 견디게 간질였다. 계집애는 호로록호로록 소리까지 내면서 국

수를 입속으로 흡입하며, 깜장 눈을 빛내며 울바자 쪽에서 서성대는 나를 할끔거렸다.

깍쟁이 계집애는 언제 한번 먹어보라고 국수사발을 내민 적이 없었다. 마 지서네 텃밭에

늘려있는 자두 한 알 주어서 건네주는 법이 없었다. 마연댁이 앞치마자락에 토실토실 익

은, 빨갛고 파란 색이 곱게 물든 자두를 가득 담아 집까지 날라주지 않았던들 침만 꼴깍

꼴깍 삼키며 풍성한 가을 한철을 속절없이 보냈을 것이었다. 


이미 결혼나이에 접어든 마 지서네 두 딸과 아들은 계집애와 놀아주기에는 많이 장성해

있었다. 마 지서네 마당에 놓인 그네와 텃밭의 새콤달콤한 자두, 부드러운 칼국수의 맛

이 나의 마음을 옭아매고 있었다. 놀이와 향기와 맛의 끌림은 계집애를 찾아가 소꿉장난

을 하는 빌미를 만들어주기에 충분했다. 새총으로 처마 밑의 제비를 쏘아 맞혀 불에 구

워 먹거나 또래친구들과 흙먼지를 들쓰고 씨름을 할 나이의 사내애가 계집애와 어울려

놀면 동네에서 웃음거리가 되던 때라 나는 버젓한 대문을 놔두고 수고양이처럼 울바자

구멍으로 이웃집을 드나들었다. 


한낮의 태양이 얼굴을 따갑게 비출 때쯤 나는 울바자구멍을 빠져나왔다. 엉덩이에 묻은

흙먼지를 털어내고 계집애가 앉아있는 그네 쪽으로 스적스적 향했다. 그때 쯤 마연댁은

우리 집에 와서 엄마와 저녁 찬거리를 꼽아보든지 자신의 과거 결혼사를 소설 쓰듯 내리

엮든지 마 지서네 자식들을 흉보든지 하고 있었다. 


계집애의 손에 자두보다 큰 과일이 들려있었다. 처음 보는 과일이었다. 


"그게 뭐꼬." 


"복숭아!"


계집애의 얼굴에 복숭아도 먹어 본적 없느냐는 듯한 조롱기와 상대방에게 없는 것을 가

졌을 때의 오만함이 발그무레한 홍조에 버무려져 언뜻 스쳤다. 


도톰한 입안으로 선홍빛 빛깔의 복숭아가 한 입 가득 베어 물리고 과즙이 입귀를 타고

흘러내렸다. 계집애는 섣불리 복숭아를 탐하지 않고 요리조리 베어 물었다. 계집애의 혀

를 자극하는 달착지근한 맛의 향기가 바람을 타고 후각을 자극하며 목울대를 세차게 울

렸다. 그때까지 복숭아를 먹어본 기억이 없는 나에게 물렁물렁해서 한없이 부드러워 보


이는 식감과 달콤한 향기는 천도복숭아를 훔쳐 먹었던 손오공의 그 복숭아로 느껴졌다.

어느새 복숭아의 말랑말랑한 과육은 형체를 감추고 단단한 복숭아씨가 드러났다. 계집

애의 치마폭에 싸였던 대여섯 개 복숭아는 사라지고 누르스름한 복숭아씨만 덩그렇게

남았다. 배가 올챙이배마냥 볼록 튀어나온 계집애가 능청스레 복숭아씨로 공깃돌놀이를

하자고 했다. 


"니는 내가 니하고 놀 거라고 생각하나."


"니 또 와그라노."


계집애는 깜장 눈을 동그랗게 치뜨며 샛말간 사슴눈을 하고 올려다보았다.


계집애는 이렇게 천연덕스러운 데가 있었다.


심통이 난 나는 계집애를 한쪽으로 밀치고 그네에 앉아 마구 흔들어댔다. 평소 같으면

앙탈을 부릴 계집애가 둬 발짝 물러서서 머쓱해서 손톱여물만 잘근잘근 씹었다. 바람소

리와 새소리만 들릴 뿐 우리 사이에 침묵이 안개처럼 자욱이 감돌았다. 


나는 발을 뒤쪽으로 힘껏 뻗쳤다가 구르며 하늘을 향해 슝 몸을 날렸다. 


쪽빛 하늘에 눈이 시려 눈물이 찔끔 나올 것 같았다. 


"뭐가 보이노."


계집애가 물었다. 


"뭐가 보이노."


계집애가 되씹어 물었다. 


"하늘이 보이지 뭐가 보이노."


"내는 그네 타면 울 아부지도 보이고 울 언니도 보이는데……"


"가시나가 무슨 이상한 소리만 해쌌노."


"호! 니가 내 맴을 어찌 알겄노."


계집애가 울바자 옆에 놓인 걸상에 오도카니 앉아 깜장 눈을 슴벅였다. 포르릉포르릉 날

갯짓 하던 한 마리 파랑새는 어디 가고 홀로 남은 날개 접은 제비 한 마리가 한숨을 토해

내고 있었다. 머쓱해진 나는 그네를 멈추고 그네 줄을 비비 꼬며 빙글빙글 몸을 돌리면

서 계집애를 흘끔거렸다. 계집애의 울적함이 공기 속에 부유하다 어느새 내 마음속에 흘

러든 듯 가슴이 먹먹해났다. 마연댁이 엄마에게 신세타령을 하면서 자주 입에 올렸던 전

남편에게 남겨두고 온 딸 얘기를 귀동냥으로 들었다. 계집애가 막내이기도 하지만 목덜

미에 팥죽새알 만 한 임파선이 붓는 병을 갖고 있어서 "불쌍한 자식 더 챙기게 되는 게

어미 맴이다."라고 하던 말도 들었다. 계집애의 깜장 눈이 물기로 번져 반짝였다.


"복숭아, 울 언니가 주고 간 거 아이가. 누구도 주지 말고 혼자 먹으라꼬 안카나."


계집애가 옷소매로 눈을 씻었다.


"니는 복숭아 사주는 언니도 있고 복이 터져뿌렸네."


계집애는 비뚜름한 나의 태도에는 개의치 않고 나비처럼 나풀나풀 날아와 딴청을 피우

며 바투 얼굴을 들이밀었다. 


"니는 내 목에 알맹이 있는 거 모르제."


잘 익은 복숭아만치 토실토실한 뺨에 난 보송보송한 솜털이 눈에 닿을 듯 하여 나는 황

급히 뒤쪽으로 몸을 뺐다. 복숭아를 삼킨 계집애의 입에서 달착지근한 복숭아냄새가 났

다. 


"내가 그걸 우예 알겄노."


"한번 만져볼래."


계집애가 목을 한쪽으로 기울이며 몸을 바짝 밀착해왔다. 


"야가 시방 와카노."


말은 이리 하면서 손은 어느새 계집애의 눈두덩 같은 목덜미로 향하고 있었다. 말랑말랑

한 알맹이가 손안에서 빠져나갈 듯 말 듯 만져졌다. 크기는 복숭아씨만 했고 말랑한 촉

감은 팥죽 속의 새알 같았다. 숨바꼭질하듯 빙그르르 도는 부드럽고 몽글몽글한 그것,

팔딱팔딱 뛰는 혈관의 흐름 따라 전해져오는 경쾌한 울림, 내 가슴속에 둥둥 북소리가

울렸다. 뜨거운 것이 손끝에서 가슴으로,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듯 진저리가 쳐졌다. 


"어무이가 그라는데 내 이 병은 뱀에게 물리면 낫는다 안카나."


"니는 와 맨날 이상한 소리만 해쌌노."


"니는 사람 말을 우째 그래 못 믿노."


계집애를 그네에 앉혀 살랑살랑 밀어주었다. 오늘은 어쩐지 그래주어야 할 것만 같았다.

계집애의 까르르 웃음소리가 허공을 가르며 새소리, 바람소리와 어울려 청아하게 울려

퍼졌다.


"쪼금 더 세게 밀어도. 쪼금 더."


어느새 겨울방학이 되었고 사방은 백설로 뒤덮였다. 사방천지가 눈 뿌리 모자라게 눈,

눈, 눈이었다. 지붕 위며 축사며 나뭇가지에 온통 눈이었다. 밤새 소리 없이 내린 눈은

이튿날 아침 출입문을 막았고 눈이 많은 곳은 어른들 겨드랑께까지 높이 쌓였다. 눈의

깊이만큼 긴 침묵 속에 잠긴 대지는 좋아라 깡충대는 강아지와 고삐 풀린 망아지 같은

아이들에게 가슴을 활짝 열어주었다. 숨바꼭질을 할 수 있는 눈 굴도 생겼다. 혼자 쏙 들

어가 있을 수 있는 후미지고 비좁고 어두컴컴한 곳이면 어디든 숨어들어갔다. 아이들은

따듯한 겨울햇살과 청량한 바람을 맞으며 바지가 다슬도록 미끄럼질을 하고 눈 굴속을

오가며 숨바꼭질을 하다 배가 고프면 토끼처럼 깡충깡충 집으로 달려갔다. 


계집애는 고양이를 포식시켰고 놈은 피둥피둥해서 느릿느릿한 품이 지팡이를 짚고 문지

방을 건너는 할머니 같았다. 검은 털이 반지르르한 놈은 창문턱에 웅크리고 앉아 저녁

불빛에 눈이 새파랗게 빛나며 나를 노려보았다. 애기 울음소리 같은 고양이의 날카로운

울음소리는 귀신이야기와 뒤섞여 어슬녘이 되어 놀이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

을 옭아맸고 고양이가 목덜미를 물 것 같은 두려움이 오싹오싹 가슴을 조였다. 


계집애는 놈과 얼굴을 부비고 놈을 아기처럼 품에 끄러 안는가 하면 놈과 한 이불을 덮

고 잤다.


"가시나가 더럽게시리 그게 뭐꼬."


나는 계집애의 이마를 손으로 꼭꼭 찍어 누르며 고양이에 대한 적개심을 감추지 않았

다. 


예순 나이를 앞둔 마연댁의 배가 우리 집 아랫목에 묻어둔 장 뚝배기만큼이나 볼록 나와

있었다. 계집애는 동생이 생길 거라며 매일 손을 꼽았다. 마연댁은 몸을 뒤뚱이며 마실

을 와서 엿 고으는 일을 도왔다. 나와 계집애는 젓가락에 아가위를 꽂고 엿물을 묻혀 울

바자에 꽂아두며


"빙탕후루"를 만들었다. 마연댁과 마주서서 엿이 하얗게 될 때까지 엿을 잡아 당겨 늘이

는 일이 제일 재미있었다. 계집애는 일본드라마 야마구치 모모에가 열연하는 드라마 붉

은 미로(赤い迷路)에 눈을 박고 있었고 나는 마연댁의 귀신이야기에 혼을 빼앗기고 있었

다. 몸이 오싹오싹해나는 귀신이야기는 바람처럼 날아다니는 산신할머니가 불치병이나

고질병에 걸린 아이를 찾아내 병을 고쳐준다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속이 바르르 떨리

는 공포감에 귀를 막고 싶은 충동과 그 아래 이야기에 대한 궁금증은 줄타기를 하며 마

음과 몸을 엿가락처럼 그 자리에 눌러 붙게 하였다. 이야기가 아슬아슬한 대목에 이르면

아랫배에 동통이 오며 오줌이 마려웠다. 몸이 바르르 떨리며 오줌이 찔끔 나올 것 같아

허리춤을 움켜쥐고 허겁지겁 밖으로 뛰쳐나갔다. 달이 휘영청 걸려 음산한 빛을 뿜는 속

에 주위의 모든 것이 실루엣처럼 흐물흐물 보였다. 인간은 미지의 영적인 세계에 대해

공포감을 떨칠 수 없어서 더 무섭고 더 신기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지도 모른다. 미지

의 세계에 대한 공포감과 끝없는 호기심은 모든 종이 멸망한 빙하기에도 살아남은 바퀴

만큼이나 끈질기기에 인간의 의식을 지배하지 않았던가. 


집과 좀 떨어진 돼지우리 옆에 붙은 뒷간까지 뛰어갈 용기는 도무지 나지 않았다. 속이

한주근해 바람벽에 대고 오줌을 찔 갈기고 허리춤도 추어올릴 새 없이 알 수 없는 영혼

이 손을 뻗쳐와 뒤통수를 잡아챌 듯한 소름이 몰려와 후다닥 집안에 뛰어 들어가며 문을

와락 걷어 닫았다.


계집애와 둘이라면 밤이 두렵지 않았다. 


계집애가 배를 끄러 안고 다리를 배배 비꼬았다. 내가 계집애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계

집애가 큰 것을 볼 때 망을 봐주는 일이었다. 


"가뿌리면 안 된다. 알았제."


"잔말 말고 빨리 끝내지 못하것나!"


"다됐다. 한 개만 더…… 응!"


"치아뿌라! 아까부터 한 개만 한 개만 해쌌노."


"요번엔 거짓말 아이라카이! 딱 한 개만……"


간다고 으름장을 놓았지만 자리를 뜨진 않았다. 


계집애가 웃음을 배시시 물고 뒷간에서 나오며 집안으로 향하는 나의 팔을 껴당겼다. 


"오늘 달이 억수로 밝네. 그지."


"오늘 보름 아이가?!"


"그럼 보름달에 소원 빌어야제."


계집애가 두 손을 여며 잡으며 성스러운 의식을 치르는 신도의 절절한 표정으로 눈을 살

포시 내리감았다. 


나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넌지시 물었다. 


"그래 니는 무슨 소원 빌었는데."


"말해뿌믄 이루어지지 않는다 안카나."


계집애는 앞서 집안으로 달려갔다. 


"야! 무슨 소원 빌었는데."


"……"


계집애의 뒤꽁무니를 졸래졸래 따르며 대답이 떨어질 때까지 계집애의 몸을 요리조리

간질였다. 캐드득캐드득 계집애의 웃음소리가 엿가마위로 모락모락 서려 오르는 훈훈한

김 속으로 사위어 가고 있었다……  


50여호 되는 우리 동네에서 제일 양지바른 곳, 터전보다 높은 산 둔덕 위에는 마을 소학

교가 자리 잡았다. 내가 대여섯 살 때 쯤 할아버지, 아버지, 삼촌들은 공동묘지자리를 밀

어내고 마을학교를 지었다. 집체호에서 개체호로 변신한 할아버지, 아버지, 삼촌네는 차

례진 수전에 모든 열과 성을 쏟았고 탈곡기에서 풍성하게 쏟아져 나오는 낱알을 흐뭇하

게 바라봤다. 수확한 곡식자루가 모아지고 학교 시공은 미장일, 목수일 무슨무슨 일들이

연세 있는 할아버지의 손사래에 의해 퍼즐 맞추듯 척척 진척되었다. 마을에서 제일 처음

으로 세워진 벽돌기와집이었다.


헐레벌떡 학교에 기어오르면 촌락과 수전, 한전이 세계지도 내려다보듯 한눈에 들어왔

다. 한전이 끝나는 곳에는 숲이 이어지고 "마피구산"이 병풍처럼 둘러있었다. 항일영웅

조상지가 일본 놈과 투쟁을 벌였다는 "마피구산", 우리말로 말엉덩이산이라니! 말 엉덩

짝모양을 하고 있다고 해서 지도에서는 장수산이란 산명이 버젓이 새겨져 있었으나 마

을사람들은 그냥 "마피구산"이라 불렀다. 학교 뒷담장에 올라앉으면 산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있는 것 같지만 도보로 1시간 반쯤 가야 산자락에 닿을 수 있었다. 거기 산은 겨

울을 날 땔감으로 싸리나무를 해올 수 있는 곳이기도 하고 봄가을 원족을 가서 보배 찾

기, 씨름, 오락모임 같은 놀이를 벌리고 맛있는 음식을 나누어먹는


곳이기도 했다. 원족을 가서 체육선생 주위에 오구구 모여 햇볕이 쏟아지는 한낮의 낮은

수풀사이로 구불구불 기어가는 뱀을 잡는 것도 우리 남학생들의 제일 큰 재밋거리였다.

산골마을 아이들은 구렁이, 살모사, 꽃뱀을 분간할 줄 알았고 똬리를 튼 뱀, 스멀스멀 기

어가는 뱀을 다루는 법이 다르다는 걸 알았다. 나무막대기로 뱀을 슬슬 유인해오고 대가

리를 발로 살짝 눌러 목 부분을 잡는 법도 일찍부터 익히 알았다. 뱀을 나무작대기로 후

들겨 때려잡거나 돌로 내리쳐 잡는 기술도 어른들의 흉내를 내며 배웠다. 뱀 껍질을 벗

기는 능숙한 손놀림의 체육선생을 경모의 눈빛으로 바라보며 맨숭맨숭한 뱀살이 노랗게

익어가는 것을 군침을 삼키며 지켜보다가 한 덩이씩 얻어먹으면 진수성찬이 따로 없었

다. 뱀고기는 할아버지, 아버지, 삼촌 그리고 우리 꼬맹이 머슴아들까지 다 좋아했다. 불

에 구운 뱀고기 맛이 천하일품이거니와 뱀 잡이의 그 아슬아슬한 스릴이야말로 남자들

이 즐기는 또 하나의 놀이였다. 


마연댁이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자연분만으로 늦둥이 아들을 보아 온 마을이 또 한 번

후끈 달아올랐다. 동생이 태어나길 손꼽아 기다리던 계집애는 진작 동생이 생기자 심드

렁해져서 혼자 마당에서 고양이와 놀며 빈둥거릴 때가 많아졌다. 그즈음 계집애의 두 볼

이 발그레 상기되어 있었고 이마에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히는가 하면 병든 병아리처럼

후줄근해서 맥없이 그네에 걸터앉아 있었다. 계집애의 손안에서 뽀드득뽀드득 복숭아씨

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기다려도."


계집애가 숨에 차 헐떡이며 소리쳤다. 학교로 향하는 오르막길을 참새처럼 포르릉포르

릉 날아오르던 계집애는 힘에 부치는지 한참 뒤처져서 따라왔다. 


계집애가 낑낑대며 담벼락에 기어 올라왔다. 우리는 여느 때처럼 학교 뒷담벼락에 걸터

앉아 저녁노을 속으로 잦아드는 마피구산을 멀거니 내려다보았다. 후줄근히 젖은 계집

애에게서 달착지근한 복숭아냄새가 났다. 


마피구산 자락에서 하나 둘씩 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귓가를 스치는 바람이 숲을 지나

빽빽한 나무사이로 회오리치며 전율하듯 휘파람소리를 냈다. 


"참 희한도 하지. 저 산속에도 사람들이 산다 아이가."


계집애가 가쁜 숨을 쌔근쌔근 몰아쉬며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산을 가리켜 보였다. 


"엊저녁 꿈에 울 할매 봤어. 내 보구 자꾸만 집에 가자카더라. 울 할매도 조기 조 산에 살

고 있음 얼매나 좋갔노. 뛰어가면 금방 갈 수 있을낀데."


"야가 시방 무슨 헛소리고? 니 할매 세상 떠났다 안 했나."


"내 말이 울 할매 보고 싶다 이 말이다."


계집애의 자그마한, 축축한 손이 내 손을 감싸 쥐더니 딱딱한 무엇이 잡혀졌다. 복숭아

씨였다. 


"너 가져."


"치아뿌라. 니는 시방 내가 얼라처럼 보이나."


퉁명스레 내뱉은 말에 눅눅함이 묻어나왔다. 


"싫으믄 그냥 버리뿌던가."


나는 손안에 들어온 복숭아씨를 으스러지게 거머쥐었다. 


계집애와 나는 어둠 속으로 널름널름 스며드는 산과 하나, 둘 꽃이 피듯 켜지기 시작하

는 불빛을 바라보며 오랫동안 앉아 있었다.


"쯧쯧! 불쌍도 하지, 꺼져가는 목숨을 어떡허면 좋을꼬."


아침밥을 지으며 긴 한숨을 구들장이 꺼져라 내쉬며 중얼거리는 엄마의 혀아랫소리가

바람벽을 뚫고 가슴에 찡 맞혀왔다.


계집애는 며칠째 고열에 시달리고 있었다. 마 지서네 앞마당에서 안절부절 못하던 나는

뱀잡이 도구를 챙겨들고 마피구산으로 향했다. 오늘은 무슨 수를 써서든 뱀을 꼭 잡아오

리라 속으로 윽별렀다. 잡아온 뱀으로 어떻게 계집애의 병을 치료할지는 모를 일이나 계

집애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란 나로선 이 방법밖에 없었다. 


나는 마피구산 입구의 나무 밑 양지쪽에서 낮잠을 자는 듯 미동을 하지 않는 초록 뱀을

뚫어지게 쏘아보았다. 푸르스름한 광을 내뿜는 놈은 지금 탈피를 준비하고 있는 중인지

도 몰랐다. 살아남기 위한 탈피, 머리에서 꼬리까지 홀라당 탈피하는 뱀의 모습이 환각

인 듯 눈앞을 흐릿하게 시선에 포개졌다. 뱀서커스단에서 피리소리가 울려 퍼지고 뱀을

부리는 사람의 발 구름에 맞추어 목을 길게 빼든 뱀이 윗몸을 곧추 세우고 늘름늘름 춤

을 추었다. 실뱀 한 마리가 어느새 뱀 부리는 사람의 입안으로 들어갔다가 콧구멍으로

실밥 빠지듯 빠져나왔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불가사의한 장면에 관중석에서 경악의 감

탄소리가 물 흐르듯 흘러나왔다. 둥둥둥 북소리가 땅을 진동하며 울려 퍼졌다. 내 심장

도 북소리장단에 맞추어 둥둥 높뛰었다. 막대기를 쥔 손이 바르르


떨렸다. 놈이 방어자세로 목을 추켜드는 순간 막대기로 목 바로 아래를 눌러 제압하고는

잽싸게 놈의 목을 잡아 쥐었다. 놀란 뱀은 시뻘건 혀를 촉수처럼 날름 내빼며 손목을 휘

리릭 휘감았다. 체육선생이 뱀을 잡는 걸 눈으로 보기만 했을 뿐 직접 실행에 옮겨 본 적

없는 나는 속이 움찔해나며 온몸에 비지땀이 빠질빠질 돋았다. 으스러지게 움켜잡은 손

바닥으로 놀란 뱀의 꿈틀대는 힘의 요동이 세차게 전해왔다. 시리고 축축한 느낌에 몸이

오싹오싹 떨렸다. 


뱀을 잡은 망자루를 들고 마 지서네 마당에 허겁지겁 달려갔을 때 가슴을 찢는 듯한 곡

소리가 들려왔다. 마당에는 마을어른들이 웅성대며 둥그렇게 몰려서 있었고 동네 아이

들이 머리를 맞대고 수군덕거리고 있었다. 


사람들 쪽으로 걸음을 옮기는 동안 가슴이 터질듯 높뛰었다. 
마당 한가운데 퍼더버리고 앉은 마연댁은 가슴에 계집애를 껴안은 채 피타는 절규를 터

뜨리고 있었다. 


계집애는 고이 잠든 아기처럼 평온한 표정 그대로 굳어 있었다. 


망주머니가 발밑에 털썩 떨어지며 나도 뱀허물처럼 아무렇게 너부러졌다. 


귀가한 내가 소파에 몸을 던지고 TV 뉴스에 시선을 박고 있을 때였다. 호주 어느 고장에

서 고양이를 통째로 삼킨 뱀이 피부가 찢긴 채 발견되었다는 뉴스가 자막아래서 빠르게

흘러갔다. 


고양이를 껴안은 계집애가 그네에 앉아 해맑게 웃고 있었다. 


그날 잡아온 뱀을 엄마는 삶아서 고기를 곱게 발라 내 밥상에 올려놓았다. 그 뱀고기를

내려다보던 나는 울바자 아래서 눈앞이 노래지도록 심한 구역질을 하였다. 야옹야옹~

주인을 잃은 고양이가 발밑에서 청승스레 울어댔다. 뱀고기를 고양이에게 내어주고, 냄

냄 맛있게 입을 다시는 고양이를 멀거니 내려다보며 나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가슴속

에 고였던 슬픔을 무한정으로 쏟아내고 또 쏟아냈다……


그 후로 마을사람들은 하나, 둘 고향을 떠나고 나도 학업을 위해, 그 뒤로는 직업을 찾아

고향을 등지고 도시라는 큰 갑속 한 곳에 뿌리를 박았다. 세월은 물 흐르듯 흘러가고 장

성한 나는 도시 사람의 생활절주와 정서에 맞게 살고자 시가지 여자와 결혼을 하고 자식

을 보고 살면서 대부분 사람들이 살아가는 생활패턴대로 몸과 마음을 굴렀다. 뼛속까지

촌놈인 주제에 시가지 사람 행세를 하면서 뱀처럼 매끄럽게 도시의 수풀 속을 헤치고 다

녔다. 그러다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면서 어느새 마흔의 나이에 훌쩍 다가와 있었다. 허

나 도시의 복숭아를 마음껏 탐하며 유유작작 노닐었던 나는 여전히 고독을 짓씹는 외톨

이었다. 문득 잊은 줄로만 알았던 계집애는 내 서랍 구석진 한 곳에 방치된 복숭아씨처

럼 마음 한 구석에 오도카니 자리 잡고 있었다. 내가 먹고 싶었던 복숭아는 사계절 가리

지 않고 언제든지 먹을 수 있는 과일로 되었다. 달착지근한 복숭아 과육을 한 입 가득 베

어 물며 세상을 아니꼽게 흘겨보며 모든 것을 누리며 살고 있다고 자부했던 나는 결코

삼킬 수 없는 딱딱한 복숭아씨를 대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픔을 나누며 "쪼금 더 세게 밀어도. 쪼금 더." 


어둠속에서 "가뿌리면 안 된다. 알았제?"


내 뒤를 따르며 "기다려도." 하던 계집애와, 


같은 방향의 산을 바라고 꿈꾸던 소녀, 소녀는 이 세상에 두 번 다시, 그 어디도 없었다. 

복숭아의 속살을 헤집으며 나는 계집애의 홍조 어린 두 볼을 떠올렸다. 복숭아꽃 이파리

가 얼굴위로 사뿐사뿐 내려앉으며 복숭아향이 코끝을 간질이고 마음속을 훑어 내렸다.

복숭아향기 속에 나는 전설속의 소녀를 떠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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