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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3-01 16:33
조모의 <<달이>>
 글쓴이 : 작가협회
조회 : 6,892  


 수필


조모의 《달》이


최국철

지구가 당장 조청처럼 녹아붙지 않을가싶을 기록적인 살인 더위가 맹위를 부리는데도 계절이 바뀐다는 신호가 왔다. 립추는 귀뚜라미 울음소리를 전령으로 무더위를 헤집고 무작정 밀고들어온다. 이 시기는 대개 《어정 8월(건들 8월이라고도 함)》인데 말그대로 8월은 흘러가는 자취없이 헐겁게 지나가버린다. 시골은 이때면 호미를 《가작》에 걸어놓고 잠자리가 날아예는 바자굽에서 장기를 뚝덕거린다. 도시에는 로인절, 자치주창립기념일이 닥치면서 거리에 녀인들의 치마저고리들이 휘날리는데 이 치마꼬리를 물고 다시 찾아오는것이 《선들 9월》이다.


가을은 그래도 도시보다 시골에 먼저 찾아온다. 시골은 이때부터 수채 화처럼 색갈이 울긋불릇해진다. 서편으로 설핏하게 기운 해빛이 무작정 피빛으로 촌야를 칠하고 서산돈들락밑에서 락조에 억새꽃이 하얗게 춤추면 어김없이 단풍이 장단 치는 계절이 찾아온다. 이때의 저녁이면 내가 살았던 남대천의 하늘은 공활하게 열리고 그밑에 기품없이 둘러선 서산의 이름 없는 산골짜기 협착한 공간으로 까만 감자알같은 까마귀 떼들이 《콱¬콱》불길한 울음소리를 랑자하게 흘리며 둥지로 찾아간다. 땀내에 절은 농부들의 등짝과 초가집 룡마루우에 떨어지는 까마귀들의 처연한 울음소리는 서산에서 자락을 펼치고 덜걱거리며 《말》 달리는 그속으로 다시 가세하면서 여름내 초록으로 정서를 고조로 이끌던 시골의 청신한 정서를 스산하게 상쇄해버린다.
이 계절을 단풍계절이라고 한다. 기실 가을은 전야에서 곡식이 익는 매틀한 냄새가 후각을 진동하고 풍요를 향약하는 풋풋한 성채가 피여나지만 정서와 감수에 따라서는 단풍계절도 서글픈 계절이 된다. 평생 농사일에 찌든 농부들과 촌옹들에게는 이런 풍경이 랑만이 될리 없고 되려 잔인한 세월의 빠른 류속과 야속뿐으로 비쳐졌을것이다. 단풍은 나무잎이 활동을 멈추고 엽록소가 파괴되면서 자가분해가 진행되는 자연현상이지만 인간은 자기의 정서를 끊임없이 륜회되는 자연속에서 조률하고 기대고 싶어한다. 더우기 단풍뒤에는 후르르 찬바람이 떨어지고 나목의 겨울이 닥친다는 그 살벌함에 더 큰 락망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한뉘 초야에서 늙어온 조모에게도 가을단풍은 또 한해가 흘러간다는 야속한 계절이였을것이다. 하학하여 헌 책가방을 둘러메고 배가 고프다고 집마당으로 득달같이 달려들어올 때면 찢어진 앞코숭이를 바늘로 꿰맨 낡은 코신을 겨우 끌고 마당에 나선 조모는 곰삭은 나무바자를 짚고 서서 서산에서 성급하게 《말》달려 내려오는 가을저녁바람에 흰머리카락을 날린다. 왜서 그 흰머리카락이 역광으로 빛나던 서산의 새초밭과 그속에서 울던 장꿩의 울음소리와 혼재되면서 옷소매에 코물을 닦던 소년의 가슴에 그렇게도 끈질긴 령념과 실락으로 남았는지…


“달이 깊어가는구나.”


조모의 단풍과 가을바람은 서글픈 탄식자체였다. 조모를 비릇한 고향사 람들, 그리고 앞집에 외롭게 홀로 살던 홀아비―《띤장》도 단풍을 《달》 혹은 《물》이라고 표현했다. 《달이 든다》, 《물이 든다》는 말은 지금은 사어가 돼버렸지만 단풍이 익는다는 말이였고 곡식이 익는다는 말로 통했다. 이 《달》은 8월중순쯤 두만강에 황어가 거슬러오를 때 콩의 떡잎부터 먼저 들고 다시 차례로 산으로 오르고 나무잎에 옮겨 타면서 단풍이 되는것이다.


하지만 지금 보면 조모의 그 《달》은 “무정세월이 흘러가는구나.” 라는 영탄곡이였고 앞집에 살았던 《띤장》이란 늙은 홀아비에게 속삭이는 정담이였다. 늙은 홀아비가 살았던 앞집이란 조모에게는 그저 물리적인 추레한 건축물이 아니라 자신의 반생의 빛과 바야흐로 사그러져가는 정감을 나누었던 늙은 홀아비가 숨쉬던 곳이였다. 어려서부터 우리 집에 놀러 와서 우리 4형제를 차례로 《곤디, 잼잼, 드디장》놀이를 시켰다고 우리 형제들에게 한결같이 《띤장》이란 야릇한 이름으로 불렸으니 《띤장》은 조모의 반평생의 이성친구였다. 십여년전 필자는 《풍경소리를 들으셨습니까》라는 제목으로 소설을 썼는데 사실 이 소설에서 나오는 인물들은 《띤장》과 조모를 모델로 한것이다.


“앞뒤집에서 사는 늙은이들이 그런 보통 사이가 아니였네라…”


필자는 이 이야기를 조모가 세상을 뜬후 마을 촌옹들에게서 들은것이다. 웅― 머리에 당장에서 충격파가 왔다. 무슨 말이냐? 조모에게 이런 뒤뜨락 사랑사연이 있었다니… 조모와 《띤장》과의 그 사랑은 《띤장》이 시집간 딸을 따라 가기전까지 이어졌으니 20여년 동안 끈질기게 이어진것이다. 돌아가신 가친은 부모의 치부라고 부끄럽다고 침묵했지만 그것이 한낱 부끄러운 치부였을가…


쌍둥이로 태여나서 자신의 머리조차 씻기 어려운 정도로 팔이 짧고 키가 작은 조모와 네살에 열병으로 소경이 된 《띤장》과의 사랑은 소속감이 뚜렷하지 못하고 인세의 통약적인 사랑에 편재하기 어려운 울타리속의 원초적인 사랑같지만 그런 사랑일수록 집요하고 아름다왔을 개연성이 있다. 세상의 색갈을 모르고 어려서 소경이 된 《띤장》에게는 평생 이 세상의 아름다운 만물상은 개념도 없었겠지만 조모와 사랑을 나누었을 《띤장》에게는 조모가 한동안은 소경의 눈을 비추게 하는 아름다운 초불이였으리라.


필자가 기억하는 《띤장》은 말을 하기전에 입안에서 “첩… 첩… 첩”괴이한 소리를 내고 눈귀로 이지르르 진물을 흘리는 홀어머니와 외동딸, 기형적인 3대의 조합속에서 끼워 살다가 세월이 흐르면서 늙은 홀어머니가 세상을 하직하고 딸도 시집가면서 외토리로 되였다. 홀로 내쳐진 《띤장》에게는 손과 발이 눈이였다. 비자루 매기, 손풍구 만들기, 함지파기 명수였는데 모든 일을 손더듬으로 했고 그 손에서 가공되여 나온 물건들이 모두 탐탁했다. 무릇 조모의 눈에는 《띤장》의 손에서 뚝딱 거리면서 만들어진 물건들은 무상한 존재였다.


내가 사법경찰로 근무할 때 남대천으로 조모 뵈러 갔다가 《띤장》이 이사한 현성으로 사업차로 간다는 말을 흘리자 조모가 가만히 나를 불렀다. 그리고는《띤장》이 그 현성 어느 촌에 산다는데 찾아가서 인사라도 해달라고 했다. 또 찾아갈 때 꼭 술을 사가라고 당부했다. 그《띤장》이 술을 즐겨 마셨다고… 앞뒤집 사이로 말동무나 하던 홀아비가 왜 하질긴 현념으로 남았을가 심상하게 생각하면서도 조모의 은밀한 부탁이라 실행하기로 했다. 《띤장》이 산다는 그 촌은 현성에서도 50여리 떨어진 어느 자그만한 시골마을로 주위의 산자락에 하얀 붓나무들이 울바자처럼 늘어선 오지였다. 찾아가보니 한해전에 이미 세상을 떠나 봇나무밭에 묻혔다고 했다. 《띤장》의 사망소식을 듣던 그 시기도 역시 하얀 봇나무우듬지에 단풍이 깃드는 무렵이였고 그 우듬지에 헌신짝같이 걸린 까마귀들이 《콱-콱》렴치없이 울어댔다.

“성식(소식) 한장 없이 그렇게 무졍(정)하게 가다니…”

조모의 주름 깊은 앞이마우로 서산에서 달려내려온 가을바람이 스치면서 하얀 머리칼이 슬프게 휘날렸다. 조모는 그렇게도 슬퍼했다. 자신과 살을 섞으면서 삼남매를 낳은 조부는 한점도 그리워하지 않으면서 그 《띤장》의 비화에 그렇게도 처연해했던 조모의 그 가을날과 바람과 단풍을 가슴 아리게 기억하는 까닭은 조모의 이루어지지 못한 그 한토막의 순애보같은 사랑전설뿐이였을가… 한여름날 곰삭은 처마밑 섬돌우에 나란히 앉아 두런두런 세상 살아가던 이야기를 했던 조모와 《띤장》, 모기를 쫓던 그 마른 쑥타래의 연기는 조모와《띤장》의 사랑전설을 싣고 하늘로 영영 날아간줄 알았는데…그것이 조모의 《달》이 전설로 지금까지 가슴에 남을줄이야…

《달이 깊어가는구나.》

해마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단풍의 계절, 조모의 그 단풍과 영탄은 위대한 생명과 그 생명과 함께 했던 사랑의 사양을 슬퍼하는 조모만의 비애가 아니라 그 시절을 살면서 세태에 저항했던 수많은《조모》들의 사랑과 비애와 그리움이였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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